다시 찾고 있어.
“넌 꿈이 뭐야?”
어른이 되고 나서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은 잠깐 멈춘다.
눈동자가 위로 한 번 올라가고,
고개를 슬쩍 돌리고,
입술이 살짝 굳는다.
마치 내가 꺼내면 안 되는 금기의 단어를 꺼낸 것처럼.
그리고 대충 둘러서 말한다.
“그냥… 놀고먹는 거?”
그래. 모든 사람의 꿈이지.
인류가 합의한 가장 평화로운 꿈이다.
나도 그 꿈, 매우 지지한다.
꿈은 먼 나라 이야기 같다.
꿈을 “생각”하느라 하루를 쓰지 않고,
하루를 “살아내느라” 생각을 미뤄두고 살기 때문이다.
꿈은…
언제부터인가
달력과 할 일 목록 사이에서
조용히 사라졌다.
어릴 적 내 꿈은 천문학자였다.
별을 연구하는 사람.
그 어린 나이에 야심 차게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Cosmos)』를 읽으며
나는 우주를 평정할 기세였다.
그리고 그 기세의 연장선으로,
나는 혼자서 상상까지 했다.
언젠가 다른 별에서 살고 있는 내 모습.
그때의 나는
이미 우주와 친해질 준비가 끝난 아이였다.
그 시절엔 밤하늘을 보는 방식도 달랐다.
별을 ‘보는’ 게 아니라
별을 ‘찾는’ 시간이 있었다.
어두운 밤, 고개를 한참 젖히고
별자리들을 열심히 이어 붙였다.
늘 북두칠성부터 찾았다.
거기서 시작하면 별들이 길처럼 이어졌다.
“저건 카시오페이아고.”
“저쪽은 페가수스…”
지금 생각하면
신화를 믿었다기보다
그 신화를 말하는 내가 멋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별을 핑계로
나는 한 번쯤 “이야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서
꿈이라는 단어는 보이지 않는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다.
마치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현실이란 게 참 성실해서,
한 번 잡으면
꿈을 꺼낼 틈을 잘 안 준다.
“이번 주만 지나면 좀 여유 있을 거야.”
“이번 달만 버티면…”
“이번 분기만…”
이런 말을 반복하다 보면,
꿈은 어느새 ‘나중’이 되고
‘나중’은 어느새
단어가 아니라 습관이 된다.
그리고 습관은
생각보다 쉽게 사람을 굳힌다.
인생의 절반을 지나온 지금,
나는 다시 꿈을 생각한다.
꿈을 얘기하고,
꿈을 그려본다.
누군가는 말할지도 모른다.
이제는 꿈을 이루거나,
꿈을 접어야 할 때 아니냐고.
근데 나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지금은 꿈을 “정리”할 때가 아니라
꿈을 “찾으러” 갈 때 같다.
예전엔 꿈이 너무 커서
이루지 못할 것 같은 것이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꿈은
이루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걸어갈 방향을 정리해 주는 지도 같은 것이다.
나는 다시 꿈을 찾아 떠나고 있다.
보물 지도를 들고,
길을 잘 모르면서도,
발은 움직이는 상태로.
확실한 건, 꿈은 크기보다 방향이다.
꼭 거창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꿈은 성공의 다른 이름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는 방식의 이름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내 꿈은
우주를 연구하는 천문학자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일지 모른다.
별을 “연구”하진 못해도,
별을 “잊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나는 계속 갈 거다.
조금 늦어도,
중간에 길을 헷갈려도,
가끔 “이게 맞나?” 싶어도.
그래도 어쨌든,
나는 찾을 거다.
내 꿈을.
내 보물을.
내가 다시 나로 빛나는 쪽으로.
너는 꿈을 그렸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