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어떤 색?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게 분명하다.
불행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데 가만히 보면.
행복을 원하면서도,
정작 “너는 행복은 뭐야?”라고 물으면 대답이 흐려진다.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어떤 상태가 행복인지,
잘 모른다.
모르면서 원한다.
원하는데 정의는 없다.
그래서 자꾸 헷갈린다.
성공이 행복을 의미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성공은 결과고, 행복은 감각이라서.
둘은 자주 겹치지만, 같은 단어는 아니다.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있다.
‘가지고 있는 것’과 ‘가지고 싶어 하는 것’ 사이의 간격이
행복을 흔든다는 말.
가지고 있는 것을 욕망하면 행복해지고,
가지고 싶은 것을 욕망하면 불행해진다는.
맞는 것 같기도 하고,
또 너무 단정적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행복은 ‘절댓값’이 아니라, ‘비교’와 ‘거리’에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나름 신박한 생각을 하나 해냈다.
행복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지 못하겠다면,
데이터로라도 남겨보자.
내 남아 있는 하루가 빈 원이라고 가정한다.
그 빈 동그라미를, 매일 색으로 채운다.
- 행복한 날은 행복한 색
- 그냥 그런 날은 그냥 그런 색
- 힘든 날은 힘든 색
하루는 작아서 잘 모르겠지만,
한 달이 지나면 패턴이 보일 것 같았다.
1년이 지나면 더 확실해질 것이다.
나는 정말 행복했는지,
아니면 행복한 척만 했는지,
동그라미의 색이 말해줄지도 모른다.
패턴이 보인다는 건, 어느 날부터 ‘오늘은 어땠지?’가
‘나는 지금 괜찮나?’로 바뀐다는 뜻이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기억은 늘 편집된다.
좋았던 날은 과장되고,
힘들었던 날은 축소되거나,
반대로 어떤 날은 그날의 감정만 남고 맥락은 지워진다.
그래서 나는 기록을 믿어보기로 한다.
내 감정의 “대시보드”를 만들듯이.
완벽한 지표가 아니라도 된다.
정확한 분석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하루에 한 번,
“오늘은 어떤 색이었지?”
이 질문만 놓치지 않으면 된다.
오늘부터 해보려 한다.
내 삶이 어떤 색으로 채워지고 있는지.
나는 무엇을 “가지고 싶어” 하느라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1년 뒤의 나는,
동그라미들을 펼쳐 놓고
조용히 한 문장을 얻을지도 모른다.
행복은 결국,
무언가를 더 얻는 일이 아니라
내 하루를 제대로 보는 일이었다고.
오늘 너의 하루도 행복한 하늘색으로 채워 지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