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에는 총량이 존재한다.

총량의 법칙

by hako

모든 것에는 총량이 존재한다.
인연도 사랑도 일도 슬픔도.
언제나 그 총량을 다 채워야 정리가 된다.

힘들어하는 사람한테는 그 사실이 위로가 되기도 한다.

끝이 있다는 사실이.

인간사 많은 것들 중에 유독 인연의 총량이 서로 다르면, 그때부터는 힘들어진다.

한 사람은 이미 다 사용했는데, 나머지 한 사람은 남아 있는 인연의 무게에 어쩔 줄 몰라한다.
남아 있는 무게를 억지로 사용하면서 상처를 낸다.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그 상처는 대개, “마지막까지 해보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끝나야 하는데 끝나지 않게 붙들어보려는 노력. 남아 있는 인연의 무게를 어떻게든 소진해 보려는 시도.
그런데 총량이라는 건 참 이상해서, 많이 쓸수록 깔끔해지는 게 아니라 잘못 쓰면 더 오래 남는다.

그래서 어떤 이별은 헤어짐보다 “추가로 남긴 감정” 때문에 더 아프다.
인연이 정리된 게 아니라 끝을 다루는 방식이 엉켜서.


한동안 나는 그 "총량”을 믿으면서도 동시에 부정했다.
끝이 있다면 지금 이 고통도 언젠가 멈출 것 같아서 안도하면서도,
정말 끝이 있다면 그 끝을 스스로 앞당기는 게 두려웠다.
마치 남아 있는 무게를 다 쓰지 않으면 내가 덜 진심인 것 같아서.

하지만 생각해 보면, 총량을 채운다는 건 꼭 “더 한다”는 뜻이 아니다.
어쩌면 어떤 관계의 마지막은 더 많은 대화가 아니라, 더 적은 기대와 더 명확한 거리에서 완성된다.
연락을 한 번 더 하는 대신 마음속에서 질문을 접는 것.
이유를 끝까지 받아내는 대신, 이유가 없는 결말을 인정하는 것.

총량이 다르면 남은 쪽은 늘 같은 착각에 빠진다.
'조금만 더 하면 돌아올 거야.'
그런데 이미 다 써버린 사람은 돌아오는 게 아니라, 멀어지는 방식만 남는다.
대답하지 않고 침묵으로 끝을 통보하는 것.


이 지점에서 남은 사람은 두 가지 중 하나를 하게 된다.
하나는 스스로를 닳게 만들며 총량을 억지로 태우는 일 '이중연소'.

다른 하나는 남아 있는 감정을 다른 형태로 옮겨 담는 일.
인연의 총량을 “상대에게 쓰는 것”에서 “나에게 쓰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후자는 더 어렵다.
단념이 아니라 방향 전환이기 때문이다.
남아 있는 마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 그 마음이 더 이상 상대에게 닿지 않도록 자리를 바꾸는 것.


감당해야 할 총량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쓰는 방식이 바뀐다.
상대에게 가던 마음이 나의 일상으로, 나의 몸으로, 나의 다음 계절로 이동한다.
그 과정이 느리고 서툴러서 우리는 종종 상처를 “마지막 증거”처럼 쥐고 버틴다.
정말로 진심이었다는 증거, 정말로 인연이 있었다는 증거.

하지만 증거는 상처가 아니라 회복이어도 된다.

남아 있는 총량을 상처로 태우지 않고, 나를 다시 세우는 연료로 쓰는 것.
그게 가능해지는 순간, 총량은 비로소 “끝”이 아니라 “정리”가 된다.

그리고 그 정리는, 상대의 대답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해주는 한 문장으로 시작될 때가 많다.

남아 있는 건 내 몫이니, 내 쪽으로 돌려놓겠다.
정리는 이해가 아니라 선택으로 완성된다.


인연의 총량이 다르면 마지막은 늘 한쪽의 몫이다.
불공평하고 억울하지만, 그럼에도 가능한 방식이 있다.
남은 무게를 억지로 소진하지 않는 것.

그렇게 하면, 지워지지 않는 상처 대신 지워지지 않는 한 가지가 남는다.
내가 나를 지키려고 했던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은 상처도 추억으로 바꿔 놓는다.



총량이라는 것이 눈에 보였으면 좋겠다. 채운건지 남아 있는 건지 알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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