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찾는 것은 여유가 있어야 하는 줄 알았습니다. 밥이 나오는 것도 아닌 데 시간 쓰지 말라고.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고. 저 자신에게 손 놓으라고 제가 타이르곤 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붙들 수 있는 여건이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돌아보니 여유와 조건과는 무관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제 몸에 창 하나를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 창 앞에 오래 앉아있으면 저는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진 것 같았고, 조금이나마 세상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Pinterest. Joanne
<좋아하는 것을 제가 한다는 것>은 제 삶에 창과 검을 갖게 되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위협적이고 차가운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따듯함과 사랑은 나약함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나를 세상에서 지켜주는 강한 무기였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아는 일>은 내 몸에 거울 하나를 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는. 내가 무엇에 기뻐하고 슬퍼하는지 노여워하는지. 그 거울 속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알아도 알아도 알 수 없는 나...
@Pinterest. Joanne
세상을 알지 못해도 이해하지 못해도 사랑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요. 살아지기도 할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해도 말입니다.
살아지는 삶.
살아내는 삶.
그러나 눈을 들어 살고 싶은 삶.
나를 사랑하며 세상을 사랑하며
살기 원하는 삶.
그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음을 저는 압니다.
안다는 것이 아플 때도 있습니다. 몰랐으면 좋았을 것들. 책은 저에게 그러했습니다. 읽기 전과 후로 저를 갈라놓곤 했습니다. 무지함을 안다는 것. 그 이전으로 되돌아갈 수 없음은 때론 두려웠습니다.
책을 읽고 돋아난 새 길들이 엉켜 저를 어렵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읽을수록 제가 디딘 땅이 물컹이자 자꾸 등 뒤에 날개를 달고 마음은 하늘로 뻗었습니다.
책 보다 이 세상에서 길을 찾길 원한다. 길은 책이 아니다. 땅바닥에 있는 것이다. 책 속에 길이 있다 해도 삶으로 나갈 수 없다면 그건 책 속에만 있는 길이다. 세상에 난 길을 걸어야 한다. 길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을 것이다... 김훈 강연/한양대학교 <책 읽는 강의실> 중에서 2010년
그러니 제가 책을 읽고 알아낸 길은 세상으로 향해야 한다고. 제가 디딘 땅을 단단히 다져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 길은 결국 제 밖을 향해 닦여야 한다고. 땅과 사람과 사람 사이로.
봄 철 꽃을 보고야 절실함이 없는 것들은 꽃피우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꽃이 피어야 열매를 맺는 순리. 절실함은 붙들 수 있는 것이 단 한 가지라는 것에서 나올 것입니다. 글을 쓰든, 그림을 그리든, 노래를 부르든... 무엇이든. 이것이 없으면 죽으리라는 것. 이것이 없으면 숨 쉬지 못할 것이라는 절박함.
죽음 같은 위기를 대면할 때 내가 도로 살아나는 아이러니. 이 모순, 을 내 몸이 겪어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비로소 이 땅에서 저 혼자서,
개별적 자아로 일어나 온전히 걸을 수 있게 된다는 것. 삶의 홀로서기.
삶의 걸음마를 막 완성하는 순간.
마침내 내 삶이라 말할 수 있었습니다.
@Pinterest. Joanne
여러 갈래의 길들 중에서 끝까지 내 손으로 닫을 수 없는 길을 알았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일, 내 삶을 글로 그려내는 그 하나는 세상 밖으로 길을 내야 한다고 합니다. 비틀거릴지라도, 뒤뚱거릴지라도 그 길을 가면서 의심하고 회의할지라도 불안할지라도. 손 놓지 말아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