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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Aug 26. 2021

오이와 나비와 벌과 나

회사 정원/처음엔 허브들만 심었다가 세 종류의 고추와 세 종류의 오이와 아크라 그리고 노란색 방울 토마토를 심었다.


   7월부터 회사 정원에서 노란 방울토마토와 초록 오이를 따는 재미가 쏠쏠하기만 하다. 전문 가든 회사가 관리를 하고 있으니 나는 그야말로 감탄과 함께 따기만 하는 것이다. 내가 토마토와 오이를 따는 그 잠깐 사이 흰나비들은 곁에서 팔랑팔랑 춤을 추고 벌들은 얼마나 부지런을 떠는지. 오이를 조심스럽게 따는 동안 줄기에 올망졸망 노란 꽃이 여럿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꽃이 열리고 벌과 나비가 찾아오고 그다음이 나의 차례가 되는 것이다.

   노란 꽃잎을 입에 문채로 오이는 빼꼼히 줄기에서 고개를 내민다. 고 작은 모습으로 자라고 자라서 길쭉한 저의 형태를 잡아간다. 초록 겉옷에 하얀색 겉씨를 솜털처럼 붙인 채 날마다 쑥쑥 자라는 것이다.

   내가 맛있게 먹을 오이를 따려면  늦지 않은 시간을 가늠하여 얼추 자란 오이를 따야 한다. 시간을 지체하면 오이의 껍질은 두터워지고 꽁지 쪽은 쓴 맛을 낸다.

아삭아삭한 오이의 맛을 기억하며 쓴맛이 오르기 전에 느릿느릿 제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달팽이와 이름 알지 못하는 벌레들에게 들키기 전에 나는 따야 하는 것이다.

   

   오이를 따면서 알았다. 오이의 줄기가 생각보다 빈약하다는 것을. 철망 지지대를 기둥 삼아 타고 오르며 자라는 모습. 그러니까 내가 먹는 아삭아삭한 오이는 그 안에 씨를 가득 품은 열매인데 가느다란 오이 줄기가 감내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것이었음을.

   오이는 세워놓은 튼튼한 철망을 길삼아 줄기를 뻗는다. 철망이 없으면 땅 위를 뱀처럼 기었을 텐데 그리되면 오이가 열리자마자 바로 땅에 심기는 꼴이 될 터이니 담장이든 철망이든 줄기의 길을 위로 터주는 것은 그 열매를 고스란히 얻기 위함이다.


   나는 열매가 자라는 동안 사랑스러운 눈길로 들여다보는 관심은 적으면서 아삭한 오이 맛만 탐한다. 다른 이가 열심히 오이 옆에서 함께 올라온 잡초를 뽑고, 시간 맞추어 물을 주고, 잔 것들을 솎아내어 잘 자라게 땀 흘린 후 돌아가면 나는 느긋하게 마치 처음부터 내 것이었다는 양 오이를 살살 비틀어서 똑, 손쉽게 따는 것이었다.

먼저 자란 오이 넝쿨


   열매를 따고 둘러보니 줄기 주변 잎들이 푸석하고 색이 누렇게 바랜 것들도 섞여있었다. 열매를 길러낸 후의 모습이 이러함은 오이를 직접 딸 기회가 없었다면 사실 알 길이 내겐 없었다.


    열매 안에는 반드시 씨앗이 있다. 힘겹게 열매를 맺는 이유는 이 때문이리라. 씨앗을 둘러싼 육질을 내가 먹는 것인데 맛있는 과육은 씨앗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며 누구든 맛있게 먹고 배설하면 그 안에 씨앗이 땅에 심어지는 것이니 내가 오이를 땀은 오이의 소리 없는 유혹에 넘어간 것이기도 한 것이다. 오이가 나를 저의 쓸모로 부린 것이다. 나는 수고함 없이 거둔 자여서 부끄러웠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가 먹은 열매 안에 씨앗들이 지금은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니 돌고도는 순환의 고리가 내게서 끓어졌음을 새삼 돌아보게 되었다.

나비 애벌레

    오이는 땅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움직이지 않지만 꽃을 피워 나비들과 벌들을 모으고, 열매를 맺어 새와 각종 벌레들을 불러내는 근방의 당당한 대장이었던 것이다. 나 역시 이 대장이 부르는 소리에 신이 나서 찾아간 것이었고. 비록 오이의 은밀한 계획에 지금 내가 벗어나 있기는 하지만 오이는 개의치 아니하고 나에게도 후히 그 열매를 베풂에 인색하지 않았다. <풍성함>이 이러한 것이라면 이것이야말로 내가 거두어야 할 진짜 열매임이 마땅하리라. 오이를 먹을 때마다 이 풍성함을 내 안에 씨앗으로 심고 자라게 하여 나눌 수 있다면 나는 오이의 또 다른 계획에 참여하는 셈이 될 것이다. 참으로 다행히 오이가 불러들인 한 생명, 한 존재로 나도 삶의 순환에 참여하게 되는 것. 비로소 오이와 내가 각각의 자리에서 긴밀히 손잡게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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