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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Aug 02. 2021

그 남자, 진상 2호

Caramel

Whole (milk)

(extra) Ex-shot...이라고 휘갈겼다.

그리고는 내 포스(POS) 기계 얼굴 왼쪽 뺨에 소리 나게 탁, 붙였다.


   처음부터 진상은 아니었는데...


   그 남자는 오늘 아침에도 거슬렸다. 소리 없이 내 영역으로 들어와 쭈뼛거렸다. 인기척에 고개를 들었다.  MAY I HELP YOU? 도 묻지 않고, 그의 첫 말을 기다렸다.


" You know, my favoreite coffee!"

이 놈의 이보릿 커피. 으아, 제일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오늘도 나에게 던졌다. 이런 나도 내가 의아하긴 했다. 다른 손님들의 커피 취향은 메모까지 하지 않았던가.


조앤 : 저는 기억나지 않는걸,요.

          '그걸 내가 왜 기억해야 하는데, 요?'

           무슨 커피... 인지...

진상 2호 : CARAMEL,

조앤 : CARAMEL?

          ' 캐러멜 시럽을 어쩌라고, 요?'

진상 2호 : LATTE,

조앤 : Ahhhh.... What size?(would you like, sir?)

진상 2호 : TALL!(PLEASE.)

조앤 : ANYTHING ELSE (with it)?

진상 2호 : EXTRA SHOT!(PLEASE.)


    오고 가는 말들은 뒤가 뭉텅 잘려나간 토막 친 무조각이 되어 왔다 갔다 했다. 나는 의무처럼 커피를 만들어 그에게 건넸다. 만들면서 생각했다. " 왜, 셀프 체크아웃 기계에서 주문을 하지 않는 걸까? 왜, 내게 본인의 커피를 굳이 각인시키려고 야단인가?" 나의 이런 헛헛한 속말들은 마스크 안에서 씩씩거렸다. 커피를 건네받은 그는 THANK YOU라는 말을 흘리며 빠르게 총총히 사라졌다. 


진상 2호님이 나가셨네.

속이 편치 않네.

내일 또 만나야 하네


   내가 근무하고 있는 미국 달라스 카페에 오는 손님들은 크게 미국, 중국, 인도, 한국 분들인데, 나라마다 특성이 있듯이 커피를 주문하는 방식도 나라마다 차이가 났다. 가장 상대하기 쉬운 손님들은 역시 한국 분들. 우선 제일 중요한 말이 통하고, 한국 분들은 스벅의 메뉴를 이미 잘 알고 있었는데 메뉴를 고를 때 딱히 추가 요구 사항을 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서였다.


   그다음으로는 중국 분들이었다. 그들은 선택하는 메뉴가 다양하지 않았는데 주로 라테였다. 여전히 차 마시기를 좋아해서 한국 손님들 만큼 커피를 즐기지는 않았다.


   미국 사람들은 과분한 칭찬과 친절을 앞세우며 다양한 요구와 다양한 메뉴를 선택했다. 먼저 고소한 참기름을 바르듯 건네는 칭찬과 친절은 확실한 효과를 발휘했기에 대부분 일하는데 심적 어려움이 없었다. 무엇보다 내게 와서 직접 주문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었다.

  

   마지막으로  인도 사람들은 의외로 개별 요구 사항이 많았다. 이를 강하게 어필했다. 먹는 커피의 종류는 라테와 모카로 한정되지만 종류와 무관하게 자신의 작은 요구 사항을 말하는데 거침이 없어서 놀라곤 했다. 매우 자세하게 자신들의 의견을 일일이 드러내었다. 내 눈엔 고집했다고 할까. 그래서 부딪치게 되는 횟수가 하나 둘 늘어갔다.


   내가 막 일을 시작할 때 진상 1호라고 이름 붙여준 손님이 있었다. 두세 번 보았을까 어림하는 정도였는데, 어느 날 아침 그는 내가 먹는 커피 알지? 하는 태도를 취했다. 나는 당황했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그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힘주어 자신의 커피를 또박또박 주문했다. 나는 주문받은 대로 만들어서 그에게 주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거의 같은 시간  카페에 그가 다시 나타났다.  셀프 체크아웃 기계는 카페에 4대가 있었다. 그는 내게 성큼성큼 걸어왔다. 이번에는 한 술 더 떴다. 내가 그를 바라보자  나를 지긋이 쳐다보더니 고개를 빠르게  두세 번 까딱거렸다. 이건 또 뭔가. 바디랭귀지라더니... 머리를 살짝 위아래로 흔드는 것은 무얼 말하는 걸까?


   와아, 한마디 말도 하지 않은 채, 너 내가 어제 먹은 커피 기억하지? 였다. 두세 번 머리를 까딱이는 것으로 문장 하나가 보기 좋게 압축되었다. 나는 순간 화가 치밀었다. 어제보다 더 하지 않은가? 말로 해도 모자랄 판에 말없이 바디랭귀지라니... 나는 역시 당황했고,  역시 모른다고 말했다. 그의 얼굴에 오히려 불쾌한 듯한 표정이 스쳤다. 나도 유쾌하지 않았다. 주문을 따박따박 받았고 커피를 만들었고 그에게 건넸다.


카페에서 그가 나가자 나는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이 일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왜냐면 그는 내일 또 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카페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거의 바뀌지 않아 좋다고 여겼는데 이런 경우는 난처하기만 했다.


   다시 보아야 하는 사람. 선택의 여지가 없는. 관계의 불편함은 내일 다시 보아야 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뜨내기손님이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다시 볼 일 없으니 똥 밟은 셈 칠 수 있지 않은가. 무서운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는. 그러나 그럴 수 없었기에 나는 적극적으로 이 일에 관하여 내 방식의 해결을 모색해 놓아야만 했다.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우선 진상 1호라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리고 내가 왜  불쾌하고 화가 났으며 기분이 나빴는지 되짚었다. 손님의 태도 때문이었다. 거만함. 거만함이 그 손님에게 있었다. 나는 연필을 쥐고 그의 커피 주문서에 진상 1호라고 쓰고는 마음을 다졌다.


 내가 먼저 인사한다!

너의 커피를 기억하고 있다!!

내일 두고 보자.


   그다음 날 그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시간에 카페에 들어왔다. 난 어제 그의 주문서를 칼의 눈으로 빠르게 훑었다. 그가 내게 가까이 오자마자, 'GOOD MORNING! WHAT CAN I HELP YOU, SIR? 나는 한 톤 높여 말했다. 그리고는 그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너의 커피를 기억한다!'라고 말했다. 목구멍은 뜨끔거렸다. 얼굴은 화끈했다. 순간 그의 얼굴에서 주름이 펴지는 소리가 날 정도로 미소가 확 번지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미소에 쾌재를 불렀다. 아하, 나는 너를 기다렸지! 올 것을 준비한 나는 준비한 말, 칼처럼 갈고 간 말그에게 그물을 던지듯 잽싸게 던졌던 것이었다. 그의 미소는 내가 단번에 낚은 물고기처럼 보였다. 그 생선 한 마리가 허공에서 빛났다. 그의 미소가 나의 승리처럼 여겨졌다. 아하, 나의 계획에 걸려들었군! 바로 이거야! 그날 이후로 그는 나의 친절한 고객이 되었다. 진상 1호는 진심 친절한 손님이 되었다.


   오늘 아침 이 손님 역시 그가 찾는 커피를 기억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왜?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물론 내가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 손님들의 메뉴가 늘어나고는 있었다. 그것은 외우려 한 것은 아니었다. 카페는 회사들이 모여있는 캠퍼스 정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대부분 같은 손님들과 매일 만나게 되는 것이 가장 이유였고, 외우게 되자 내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겨서 좋았다. 그 사이 서로의 안부가 하나씩 늘어나면서 나는 그들을 잘 기억할 수 있던 것이었다.


   그 손님은 왜 내가 그의 뻬이보릿(favorite 좋아하는) 커피를 알거라 생각하는 걸까. 내게는 과도한 기대다.  사실 그가 원하는 것은 외워달라는 것인가? 알아달라는 것. 글쎄, 왜?


   피를 사고팔 때 우리는 서로 돈을 주고받았다. 일상의 거래이고 이것으로 서로의 필요는 충족되었다. 문화가 달라서 내가 이해를 못하는 것인가. 정말 그럴까. 혹,  그는 <말하기>에서 실패한 것은 아닐까?그의 의도가 나에게 전달되지 않았으니.


   내 속을 불편하게 만드는 이 손님, 진상 2호라 쓴다. 지난번엔 계속 보아야 하는 <불편한 관계> 문제였다. 이번엔 그에 더하여 <말을 전달하는 기술>까지 생각해야 하는 난이도가 한층 더 높아졌.


아, 어떻게 풀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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