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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조앤 May 24. 2021

팔려야 책일까 읽혀야 책일까

글 조회수를 생각하다

 이웃님 <나다운 이야기> 서평 글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 팔려야 책일까, 읽혀야 책일까. 나는 책을 내고 싶은 걸까.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이것을 나의 질문으로 삼았다. 나는 어떠한지...

나는 96년도에 미국으로 왔는데, 이후 세상이 온라인 세계로 재편되어가는 동안 나는 미국에서 전적으로 세 아이 육아와 집안일에 홀로 전념해야 했었다. 나는 그쪽으로는 섬처럼 고립되어 가고 있었고, 생활의 현장에서는 언어적 제한에 부딪치고 있었다.

작년 2020년 블로그 개설 한 달 후 10월 중순부터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브런치에서는 10월 중순에 작가가 되었고, 12월 중순이 되어서야 블로그에 올렸던 글들을 중심으로 12편의 글을 모아 북 발행 1권을 끝냈는데 이로써 거의 20년 만에 한국어로 귀환했다고 할 수 있었다.

질문으로 돌아가면, 나는 책을 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블로그나 브런치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나는 글을 통한 이해가 빠르고, 글로 생각과 마음을 전달하는 것이 가장 편안한 방식일 뿐이었다. 그래서 블로그 사용에 익숙해진 후에는 글을 써서 올리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웃들과의 소통이나 이웃들을 늘려가는 일들이 쉽지만은 않았다. 내가 관심을 갖고 있던 <시> 필사와 글쓰기 모임참여하기를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공통 관심사를 가진 이웃들과 깊은 소통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오랜 미국 생활그동안 한국의 빠른 사회 변화를 다 알기 어려웠기에 나는 조심스러웠다. 감사하게도 이 모임을 통해 많은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내가 쓴 글들에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었지만 그것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특히 글에 대한 반응이 참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를 들면 블로그 이웃들에게 관심이 높은 글이 있고, 브런치에서 관심이 높은 글이 달랐다. 이는 블로그 <이웃>들과 브런치의 <구독자>들의 연령과 성별, 취향 등이 다르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브런치는 블로그와는 달리 보다 글쓰기에 특화되어 있는 플랫폼이라 글의 다양한 모습을 접할 수 있었다. 가장 다른 것은 브런치에는 광고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발행한 1권의 북-책 발간 시에는 초고 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이 지난 2월 중순 브런치 메인에 올라 많은 조회 수를 기록했다. 이후 <냄비 밥> <친정 엄마표 간고등어와 시엄마 표 무말랭이> 글 두 편이 다음 메인에 노출되어 조회 수가 3천, 6천이 넘었다. 블로그에 올린 글을 브런치에 시간을 두고 그대로 올렸다. 네이버에는 이러한 노출이 한 번도 없었다.

내 글을 누군가 읽어주는 일은 기분 좋은 일이다. 공감을 받는다는 것. 특히 글에 대한 공감을 통하여 내가 살아가는 일상과 이웃들이 살아가는 삶 속에서 소소한 이야기들로 다른 듯 같다는 것을 아는 일은 즐거웠다. 좋은 경험이었다.

좋은 경험이라 함은 일상의 글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이 따른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었다. 누구나 오늘 하루를 살면서 겪는 생활에 함께 공감한다는 것. 그러니 내가 쓰는 글에 어려운 단어나 현란한 글재주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 나의 진솔함을 담는 것이 중요한 것이었다. 나의 경험을 통하여 배운 것들을 담아내는 것. 나의 실수가 실수로 끝나는 것이 아님은 그 실수로 내가 배웠듯 글을 읽고 공감한 사람도 나처럼 글을 통하여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글쓰기의 이로움이랄까. 나에게 유익했다면 다른 이들에게도 유익하다는 것. 나를 살렸다면 남도 살릴 수 있다는 것을.

그러나 메인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내 글을 누가 읽는다는 말인가. 읽지 않는 글을 내가 써야 하는가.

지난 4월에 블로그에 올린 <결혼기념일> 글을 제목을 바꾸어 <열무김치 담글 뻔한 결혼기념일>로 브런치에 올렸는데  카카오 탭에만 올라서 조회 수가 3일 동안 1천을 기록했다. 흥미로웠다. 보통은 다음과 카카오 탭에 같이 노출이 된다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주 주말 동안에는 <김치의 수난> 글이 다음 메인과 카카오 탭 두 곳에 모두 노출이 되어 이틀 동안 3만 3천의 조회 수가 나왔다. <김치의 수난> 글이 의아했던 것은 글이 포스팅된 후 10일이 지나서 메인에 노출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대개 그날 올린 글이 당일 메인에 올라갔었다. 알고리즘에만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나름의 판단을 해볼 뿐이었다.

이제 나는 이 조회 수가 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조회 수가 블로그에서 이웃과 같은 브런치에서 내 글의 <구독자> 수를 증가시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조회 수는 숫자로만 남을 뿐이었다. 나에게 이득으로 돌아오는 것은 없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말을 길게 하는 것이다. 광고가 없으니 그렇고, 이 계기가 책 출간으로 이어질 것도 아니니 그렇다.

질문으로 다시 돌아가겠다.

" 팔려야 책일까, 읽혀야 책일까. 나는 책을 내고 싶은 걸까.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조회 수가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 것은 사실이다. 조명을 받고 있다는 느낌.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조명은 꺼져야 하고 나는 잠시 입었던 화려한 드레스를 벗어야 한다. 그 화려함을 잠시 알 수 있었다는 것이 지난주 조회 수 증가에 따른 큰 유익함이었다 할까. 조회 수는 허수와 같았다. <블로그의 이웃들>과 <브런치의 구독자들>이 남기는 댓글과 공감 하나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사람들이 밀물과 썰물이 되어 왔다가 사라졌다. 나는 그 많은 사람들과 유의미한 소통을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들이 누군지 나는 한 명도 알 수 없었다. 발자국은 숫자로만 남겨졌다. 허무했다. 허탈했다.

그렇다고 조회수를 무시하자는 것은 절대 아니다. 조회수는 독자수이다. 글을 읽은 사람들이다. 어떤 이유로든 내 글이 많은 독자를 찾아갈 수 있다면 그래서 유익함으로 남을 수 있고, 공감으로 어떤 형태로든 삶을 살리는 일을 해낸다면 더 바랄 것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매번 내 글의 노출에 신경을 쓰고 있는 내 모습도 보았다.

내 글의 첫 독자는 <나>라고 했다.

내 글의 첫 독자는 가장 예리하다. 내 글이 어떤 글인지 안다. 내 글에 가식이 있는지, 꾸밈이 많은지, 척하는지. 내 글이 어떤 의도로 쓰였는지도. 나는 나의 첫 독자를 눈속임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다행한 일이고 감사한 일이다.

내 글은 최소 구독자 1명으로 시작하며 댓글 1과 공감 1로 시작한다. 나는 책을 쓰기를 원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책을 쓰지 않았다. 사실 책은 쓸 수 없다. 다만 쓸 수 있는 것은 글이다. 책은 편집자가 만드는 것이다. 편집자는 글을 책으로 새롭게 탄생시킨다.-혼자 남은 밤, 당신 곁에 책/표정훈


    나는 글을 쓰고 싶었던 것이다. 내 글은 나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었고, 이웃들에게 열린 창이었으며, 세상으로 나가기 위한 첫 계단이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글을 올리든 그렇지 않았던 그전이든 이것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시필사방-공심재

**내 글에서 빛이나요-일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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