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듯하다
- 후배 K에게
박철
나도 이제 한마디 거들 나이가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한마디 하마
시를 쓰려거든 반듯하게 쓰자
곧거나 참되게 쓰자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사진기 앞에 설 때
우뚝하니, 반듯하게 서 있는 것이 멋쩍어서
일부러, 어거지로, 더욱 어색하게
셔터가 울리길 기다리며 몸을 움직인다
말 그대로 모션을 취하는 것이다
차라리 반듯하게 서자
촌스럽게, 어색하게, 부끄럽게
뻣뻣하게 서서 수줍으면 좀 어떠랴
이런 말 저런 이름 끌어다 얼기설기 엮어
이런 것도 저런 것도 아닌 모션 취하지 말고
그냥 반듯하게 쉽게 쓰자
브런치를 시작할 때 나는 나에게 물었다.
너는 <글>을 사랑하는지.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하기 너무 힘들었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서랍 깊은 곳에 있던 내 <글>을 꺼내 보여주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그리고 이 무거운 질문은 나를 꽉 가로막았다. 부끄러움을 뒤로할 수 있었던 것은 <책>이 작가를 떠나면 그 책의 향방은 그 책을 읽는 사람, 독자에게 넘어간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글을 쓴 사람 작가는 <책>이 나오는 순간 책을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 책의 일생은 작가를 떠나면서 비로소 시작한다는 것을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블로그에 첫 글을 올리기 어려웠다. 이순신의 필적(必死則生必生則死)을 앞에 놓고 비장한 마음이 되었다. 그렇게 어려울 줄은 몰랐다. 그렇게 진지해질 줄은. 그것은 내가 <글>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새삼스럽게 확인시켜 주었다. <블로그>는 나에게 너의 글을 꺼내놓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말 아느냐고 물었다. 나에게는< 생각의 전환>을 묻는 중대한 질문이었다.
글을 꺼내 놓는다는 것은 내 글이 발행되는 순간 내 글의 향방은 이웃들의 몫으로 넘겨진다는 것. 나를 떠나 <글>의 한 생을 저 스스로 산다는 것.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을 산고라고 한다는 것. 그것을 어림잡고서야 나는 글을 올릴 수 있었다. 내 글을 나에게서 떠나보내는 용기를 <이순신의 필적>을 필사하면서 얻었다.
생각의 전환은 삶의 전환이었다.
나는 글을 읽는 사람이면서 쓰는 사람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