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욕망
그림 모임인 '각자의 시선' 정기전이 시작되었다. 나는 예전에 그렸던 그림과 처음 전시에 거는 그림을 합쳐 네 점을 걸기로 했다.
전시장은 마법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그림을 돋보이게 혹은 오해하지 않도록 세팅된 새하얀 벽에 못을 박고 그림을 걸고 조명까지 조절하고 나면 그림들은 더 이상 작업실에서 보던 것이 아니다. 넓고 텅 빈 공간과 새하얀 벽, 그림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는 조명이 이런 조화를 부리는 것일 텐데 인테리어라는 분야에 관심이 없다가도 놀라움과 함께 호기심이 생기기도 한다.
이 작품은 벌써 이십여 년이 넘게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원미숙 작가의 '타자의 욕망, 68X128cm'이라는 작품이다. 한지에 분채로 민화의 양식을 빌어 그려진 이 작품에는 부서진 혹은 해체된 책가도와 웅크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등장한다.
"민화는 부귀영화와 행복을 기원하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은 흔히 말하는 행복이란 것이 과연 나의 욕망에 얼마나 부합하는가에 대한 질문과 '내 욕망을 위해 나의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와 같은 자기반성에서 시작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특히 책가도는 옛날 선비의 방에 학문에 정진하라는 의미로 장식한 것인데 그것을 보는 방의 주인은 정작 힘들고 답답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인 것입니다."
원미숙 작가는 나의 욕망이 실은 내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는 자크 라캉의 철학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서의 고민도 덧붙였다.
"작가의 입장에서 보면 예술가가 작품을 만들 때 관객이 좋아할 만한 것, 평단이 인정할 만한 것을 의식한다면 이는 타자의 욕망을 좇는 행위가 되는 것과 마찬가지겠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명으로 오랜 시간 작업을 하다 보면 가까운 동료가 화단에서 인정받기도 하고 전시장이나 아트페어에서 완판 했다는 소문도 듣게 된다. 자신의 부족함과 사람들의 몰이해를 탓하다가 자신이 바라던 주제와 스타일을 버리는 경우도 왜 없겠는가.
이 작품에 대한 이해가 여기까지 닿은 적이 없었다. 사고력이 부족하여 미치지 못한 것도 있고 작가로서의 성공을 추구하는 욕망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 탓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무언가를 선택해 본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내 작업이 전하는 정서에 공감하는 사람과의 만남을 기대하는 편이기 때문에 나의 욕망이 조금 더 내 것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작품은 이번 전시부터 함께 하게 된 금토록 작가의 작품이다. 금토록 작가는 십여 년 전에 화실 수강생으로 인연이 시작되었는데 지금은 누구보다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어 대견하고 자랑스럽기도 하다. 얼마 전 작업을 하고 있는 이 친구에게 조언이랍시고 나의 욕망을 투사하는 실수를 저질렀는데 '타인의 욕망'을 제대로 감상한 후에 더욱 후회를 하게 되었다. 한때 그림을 지도했다는 이유로 타인의 순수한 욕망에 침범하여 웅크린 아이로 만드는 실수는 반복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