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연밭에 갔을 때가 생각난다. 바람이 불면 강물이 흘러가듯 푸른 잎이 넘실대고 꽃은 어쩌면 그렇게 크고 아름다운지. 그런데 그보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한여름의 숨 막힐듯한 무더위를 잊게 만드는 연꽃의 향기였다. 그 향기가 현실 세계에서 비켜나 취한 듯 시간과 공간을 잊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근래에는 연꽃을 소재로 작업을 할 때 화면에서 꽃을 점점 줄여가고 있다. 온통 푸른색의 공간에 붉은 꽃을 그려 넣으면 꼭 나만 보아달라고 외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냥 이쁜 꽃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화면에서 꽃이 사라지고 나니 푸른 잎의 리듬과 짙은 그늘의 깊이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