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않는 그저 존재하는 시간의 필요성
우리는 항상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대한 사고와 고민을 해야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곤 한다. 그것이 요즘같은 바쁘고 치열한 세상 속에서 한 걸음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일테다. 큰 그림을 바라보지 않고 당장 달려야 해서 채찍질을 당하는 말처럼 체력만 소진한다면, 자신을 불행의 끝으로 내몰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모닝 미라클 다이어리]라는 책을 읽다가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비워내는 시간 1분, 오로지 존재하는 것에만 집중하는 시간 1분이 나를 편안하게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저자의 의도와 생각을 떠나서 다만 저 문장이 내게 주는 파고는 아주 높았다. 요즘의 내가 가장 필요로 하는 시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동안 나를 괴롭히고 자책하고 힘들게하던 문제들은 주로 사람과의 관계에 관한 것들이었다. 게다가 그 누구라도 최악이라 말할 수 있는 직장 상사와의 관계. 을의 입장에서 철저히 두 손을 뒤로 묶이고 두 입을 테잎으로 막힌채 오롯이 모든 것에 수긍할 수 , 아니 수긍하는 척 할 수 밖에 없는 스트레스의 근본이 되는 관계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가끔 참 우스울 때가 있었다. 우리 부모님과 맞먹을 정도의 나이차가 벌어지는 상사가 왜 나에게 이렇게 굴까, 왜 유치하게 굴며 모든 일에 감정적으로 결론을 내는 걸까 하고. 그러다 보면 결론은, 이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지금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나와, 이 상황과, 상대방을 멀리서 바라볼 필요가 있었다.
'일기를 씀에 있어 가장 큰 후회는 내가 그 일기를 조금 더 일찍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음도 어려운 어떤 서양의 철학자의 명언이라고 한다.
글을 씀에 집착을 부릴 때가 많았다. 결과물을 쌓아 나가려기보다는 글을 쓰면서 받았던 위로, 쓴 이후 안정되었던 마음 등을 몇 번 겪어본 내가 힘들 때 마다 진통제처럼, 마약처럼 찾아댔던 것 같다. 마치 덜 아프려는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항상 논리에 집착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다음 스텝에 대해 고민해 나가는 내 일기장과 함께 명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채워나가는게 글쓰기의 목표라면, 비워나가는 명상이 불가분으로 따라와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많은 일들을 겪는 시절, 내게 가장 힘든 행위는 그 일들로부터 떠나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옥죄고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행동이라도 실천에 옮기는 모습만이 내가 찾는 유일한 탈출구이기 때문이다.
이런 나에게 아무 생각없이 명상을 하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어쩌면 나같은 성격을 숙명처럼 타고난 사람에게는 쓰면서 채우는 것 보다 생각하지 않으며 비우는 것이 더 좋은 효과를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비워내는 만큼 다음에 또 채울 수 있으니, 헌 것, 썩은 것을 버리고 새롭고 바른 것을 채울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기도 하지 않을까?
한 걸음만 뒤로 물러 나기가 그리도 힘들다. 한 발짝만 물러나면 모든 것이 편하고 작고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일턴데,
그 한 걸음을 내딛기 전 나는 지옥 속에서 온통 악마에 둘러 쌓여 살다가, 한 걸음을 내딛어 몸을 옆으로 돌려 놓으면 천국 속에서 행복한 매일을 보내게 된다.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 범위가 그리 넓지는 않나 보다. 항상 한 걸음 지척에 천국과 지옥이 붙어 있는 딱, 그 정도의 인식차이가 삶이라는 것인가 보다.
2016년 11월 23일
백년 만에 요가를 다녀와서인지, 눈이 반쯔음 감겨있는 날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