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십여년 간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힘에 대해 허락한 적 없다.
'평범하고 흔한 사람입니다.' 라는 식의 자기소개를 좋아해왔다. 아니, 좋아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조금 입을 다물고 뇌를 열어 생각을 한다면, 과연 이 세상에 자기가 평범함이, 남과 다를 것 없는 특징없는 사람임이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인간의 생존 욕구와 맞먹는 것이 인정받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한다. 남자가 여자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친구가 친구에게,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그리고 앞서 말한 이 모든 관계의 상하가 바뀌어도 말이다. 사람은 자신의 역할과 위치와 필요성에 대해 인정받지 못해 목숨까지 끊어 내바치곤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내 스스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한다면 나는 모순덩어리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평범하고 튀지 않고 싶다 하였으면서도 나는 내심 뛰어나길 바랬고, 누군가가 바라봐주기를 갈망하는 사람인 것이다.
오랜 세월 봉인되어 있던 이 글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십 년이 훌쩍 넘는 세월동안 많게는 매일 적게는 한 달에 한, 두번씩 일기라는 이름의 글들을 써왔다. 꽁꽁 숨겨도 보고, 쓰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기도 하였다. 누군가가 내 생각을 가감없이 읽고, 평가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나라는 사람을 알아가려 든다는 사실이 불쾌했던 것이다. 그러나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나는 누가 읽을지 모르는 이 인터넷 상의 플랫폼에 내 생각과 글을 내 손가락으로 남기고 있다.
글 뿐 아니라 삶이란 것이 그런 것이다. 지금까지의 짧은 삶을 살아오며 내가 내 자신으로부터 발견한 사실은, 나는 실은 굉장히 많은 애정과 관심을 필요로 하고 갈망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 사실을 부인하고, 혼자가 편한척 더 바쁜일이 있는척, 누군가의 보살핌이나 애정이 짐스럽고 귀찮은 척 해 오지만 그것은 모두 가면을 쓴 내 모습일 뿐이었다. 이런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감추고 숨기면서 강한 척 해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내가 솔직해도 되는 사람들을 힘들게 괴롭히곤 한다. 연애를 하던, 가족이 되었던, 둘도 없는 친구이던 간에 내가 내 본 모습을 보일 수 있을 만큼 경계가 허물어진 사이라면, 금새 나는 애정과 관심을 갈구하고 충분한 피드백이 돌아오지 않으면 짜증으로 응징하는 것이다.
그렇게도 나는 나약하고 기댈 곳이 필요한 사람인 것이다.
한번도 이러한 것을 나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다만 내 자신이 바라는 모습이 그것이 아니기에 시침이를 뚝 떼고 그저 강한 사람으로 속여가며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옛 말에 참새가 뱁새 따라가다 가랑이가 찢어진다 하였던가. 타고난 강함이나 수련된 진정한 강함이 아니라 꾸며진 가면 속에 사는 나는, 남들에게는 티 내지 못할 더 많은 외로움과 고통들이 내면 속에 쌓여만 가는 악순환의 루프를 돌고 있다.
그래서 다짐한다. 이제는 뭔가 근본적인 강함을 키우고 싶다고. 강해보이는 것이 아니라 강한 삶이고 싶다고. 때로는 참아도 보고, 다 뱉지 않고 담아둬도 보고, 위로 받지 않고 감춰도 보는 삶 말이다.
언젠가는 다 뱉어내고, 설명하고, 위로받으며 건전하게 풀어나가는 중이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래, 솔직히 길지 않은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러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본격 시작하며, 매일 부정적인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 시기를 몇 달 보내다 보니, 내가 뱉어낸 하소연과 푸념들이 위로가 되거나 아무는 상처가 되지 않았다. 되려 나를 위로해주고자 하는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생채기만 낼 뿐이다.
내가 선택한, 아니 어쩌면 내가 할 줄 아는 유일한 방법은, 쓰고 쓰고 또 쓰는 것이다.
방콕 여행을 떠날 때 스마트 폰의 성능이 매우 떨어지는 구형모델을 손에 쥔 나는, 왠지 모를 도전의식에 종이 지도를 스무장 남짓 출력서 가방 한 켠에 쑤셔 넣었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타지에서 종이지도를 쳐다보고 길을 열어 간다는 게 얼마나 답답하던지. 그런 디지털 세대인 나에게도 생존본능은 있었던 터라, 금새 적응하고 방콕 시내를 누비기 시작했다.
지도다. 낯선 여행지에서 나를 구해준 것도 지도고, 처음 살아보는 20대의 매일을 살아가는 나를 구해줄 것도 지도다. 종이와 잉크로 된 것. 구불구불 자기네들끼리 닿고 끊어지며 그림과 글자를 만들어 내는 물건. 미래를 보고 걸어나가기 위해 만들었지만 과거를 그대로 기록해 놓은 것.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더이상, 이해받을 사람이나 곁에 있어 주는 애정어린 시선이 아니라, 지도다.
모든 시련을 내가 그린 지도와 그 지도를 읽어가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내 스스로라는 동반자와 넘어야 내 시련이 되고, 내 경험이 되는 것이다. 같은 세월을 살아도 내가 하는 경험들이 나를 값진 사람으로 만들고, 한정적인 세월을 초과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앞으로 이 공간에서 나는, 가면을 쓴 '평범한 나'에서 특별함을 인정받고 싶은 '소중한 나'로의 지도를 그려갈 것이다. 스스로를 속이지도, 남을 속이지도 않아도 되는 공간에서 조금은 가면을 벗고 나조차 처음 발견하는 나를 만나가기를 바란다.
2016년 11월 15일 자정이 가까운 밤.
지도 한 장 없이 매일 같이 길을 잃는 20대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