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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마타타 Nov 26. 2016

지금 나는, 나에게 여행 와있다.

뱉고, 뱉은대로 쓰고, 쓰대로 산다.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들에 대한 소중함을 말로만 알아온 나이다. 

세상 누구보다 가깝게 지내기로 약속한 한 사람이 생기고 난 후, 나는 나 자신에게 잔인할 만큼이나 무심했다. 한 번도 먼 길을 떠난 적도,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한 적도, 작은 그림과 큰 그림 속에 내 모습에 대해 돌아보기도 모두다 소홀했을 뿐이다.


토요일 오전 늦잠에서 깨어나서 씻고는 무작정 시동을 걸었다. 여수라는 곳이 어떠한 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기에 별다른 검색이나 계획도 짜지 않았다.

여수에 무언가를 보러 가는 길이 아니었다. 부산으로부터 멀리, 회사로부터 멀리, 그로부터 멀리 한 번 떠나 보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 목적지가 꼭 여수일 필요도 없었다.


우중충한 하늘이 아쉽기도 했지만 이내 그냥 받아들이기로 한다. 조금 흐리면 어떻고, 조금 우중충하면 또 어떤가. 하늘과 해를 보러 가는 길이 아니지 않았나.

입을 다물고 노래를 들으며 밟은 액셀레이터 위로 많은 생각들이 스치운다.

처음에는 웃음이 나는 생각들, 그와 처음 만난 때, 과거 원했던 꿈들 중 지금 내가 이룬 것, 잘 다녀오라며 내 시간을 존중해주는 부모님, 내가 무얼한다 한들 이해해주겠다는 우리 친구들..


겨울에 들어서는 11월의 말에 해는 그리 길지 않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를 지나 속도를 높이다 보니, 빗줄기는 굵어지고 해는 뉘엿거리기 시작했다. 오롯이 혼자인 시간도 한 두시간 넘게 흐르고, 들었던 노래들이 한 번 더 반복되기 시작했다. 웃음이 사라지고 한숨이 들어나고 떠나온 길이 무색하게 조금은 가라 앉는다.








무언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생겼다. 미래에 내가 하고싶은 일이다. 크고 작은 위기도 있고, 작은 기회들이 보이기도 한다. 

불과 1년 전에 나는 간절히 원하는 직장이라는 이름으로, 두 눈 꼭 감고 바라는 것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딱 1년 후, 우습게도 나는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중이다.

내가 이쁘기도 했고, 고되다 느껴지기도 했다. 항상 원하는 무엇인가 있는 나의 모습은 내가 상상하던 20대의 모습과 매우 잘 맞는 면이 많았다. 만족하기보다는 나아가려고하고, 안주하기 보다는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참 긍정의 힘, 생각의 힘이라는 것을 경험해볼 기회가 많았던 것 같다.

나는 항상 원하는 것을 남들에게 이야기하며 살아왔고, 그 과정에서 내가 원래 원했던 것 보다 더 많이 그것을 원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 번 도 생각해보지 못한 구체적 사항들이 남에게 말을 하는 순간 번뜩이는 아이디어처럼 만들어져 스토리를 더 풍성하게 만들어 오곤 한 것이다.


그런 것들을 쉴 틈없이 이야기하고, 공유하고, 생각하고, 쓰고, 읽고 또 쓰다보니 어느새 고개를 들면 내가 원하던 바로 그 위치 근처에 와 있을 수 있었다.


이번 일도 마찬가지다. 물론 지금까지의 어떤 것들 보다는 오래걸리고 멀고 힘든 길이 되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까지의 나처럼 나는, 원하는 것을 뱉고, 뱉은 대로 생각하고, 그 생각한 대로 글을 써갈 것이다. 그러다보면 내 삶은 그것들이 응집된 새로운 어떠한 곳으로 가게 된다.

그것은 긍정의 힘, 생각의 힘이라는 말로 포장될 수도 있겠지만, 내 스스로는 그것을 노력, 한결같음 등의 조금 더 구체적인 형용사로 포장하고 싶다. 


결코 이러한 에너지와 결과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신적이고 신비한 힘이 아니다. 뱉고, 쓰고, 생각하고, 살아냄으로써 내 스스로 끊임없이 노력하고 한결같이 나아감의 결과인 것이다.



잘못한 것도 나이고, 잘 한것도 나이다. 



너무 많은 계산과 시나리오는 내 눈을 멀게 하고, 귀를 닫히게 한다. 

때로는 내 눈앞에 내가 원하는 길 하나만 생각해야 더 선명한 답이 보일 때도 있는 것이다. 설령 그 길이 험해서 돌아가야하거나, 가는 길에 넘어져 피딱지가 앉더라도

그 길을 외면하고 피해 잘 닦인 길로 갔을 때보다 더 가치 있을 것이다.



오늘 내 목적지는, 지금 내 위치는 여수에 와 있지만,

나는 오늘 어디에도 오지 않았다.


다만 나는 나에게 온 것이다.


아주 긴 시간만에 찾아와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앞으로는 조금 더 자주 들릴게. 라고 말하고,

하루 하루를 살아가며 멀리 있을지라도 매일 생각할게.

다른 자극적인 여행지만 찾아다니느라 외면해서 미안해.

라고 말하고 싶다.



지금 나는 나에게 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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