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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쿠나 May 16. 2021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

터키 코로나 19 봉쇄령 가운데 살아남기

터키는 4월 말부터 라마단이 끝나는 5월 17일까지 봉쇄령을 내리면서 일상 외출이 전면 금지되었다. 식당과 카페는 포장과 배달만 가능하며 생필품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보로만 이동하여 구매할 수 있고 그 외 비 생필품을 판매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게들은 모두 문을 닫았다.


우리가 한국 생활을 접고 터키에 도착한 건 5월 2일, 마트마저 문을 닫는 일요일이었다. 코로나 19로 인해 공항 내 편의 시설은 모두 닫혀있었고 안탈리아 공항 귀퉁이에 열려있던 투르크셀 (turkcell) 매대에서 투어리스트 심카드를 가까스로 하나 샀다. 꽤 번거로운 걸음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이때 수고롭게 심카드를 사지 않았더라면 우리 부부는 일자리도 잃고 쫄딱 망할 뻔했다.

왠지 찍어두고 싶었던 turkcell 판매대, 봉쇄령 기간에는 통신사도 모두 문을 닫아서 공항 외에서는 심카드도 살 수 없었다.



사진과 영상으로만 봤던 페티예의 집은 좋기도 하고 썩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널찍한 부엌과 채광, 뒷산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가장 거슬렸던 건 집구석 구석 벽과 가구까지 배어있던 담배냄새. 이 집의 많은 장점을 다 지워버릴 정도로 거슬렸다. 특히 아이 놀이방으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던 1층 방은 심지어 우리가 '담배방'이라고 부를 정도로 담배 냄새가 지독했다. 집을 계약하면서 가전과 가구까지 모두 인수받았는데 담배방에 있는 소파들은 당장이라도 집 밖으로 내던져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코로나 봉쇄령으로 인해 2주 간 모든 거슬림과 불편함은 넣어둬야 했다.


기내용으로 들고 간 짐만 이만큼. 경유하면서 이고 지고 다니는 게 제일 힘들었다.



한국에서 세 식구의 짐을 이민 가방에 채워 넣으면서 생필품에 가까운, 꼭 필요한 옷가지와 물건들만 챙겼는데도 공항에서 물건 여럿을 버려야 했다. 당연히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물건과 무게가 많이 나가는 것들이 우선적으로 버려졌는데 그중에는 참기름과 고추장, 간장, 디퓨저가 있었다. 터키에 도착해서 참기름을 짐가방에서 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해외 생활을 하면서 한국 퀄리티는 아니어도 참기름은 비교적 구하기 쉬웠던 기억이 있어서 두고 왔는데 일단 페티예에서 가장 큰 마트인 미그로스에도 참기름은 없었고, 온라인으로 구입한 참기름도 전혀 향이 나지 않는 식용유 같은 오일이었다. 꽃시장 향을 담은 디퓨저는 아무래도 필수품은 아니고 취향템이라 생각해서 뺐지만 집안 곳곳 배어있는 담배냄새를 맡으며 ‘그건 반드시 챙겼어야 했는데!’ 하며 2주가 지난 지금도 종종 미련이 남는다. 이 뿐인가. 낮 평균 기온이 30도가 넘어가길래 당연히 여름 날씨를 예상하고 왔는데 밤마다 너무 추워서 긴 팔 긴 바지를 다 챙겨 입고도 오들오들 떨며 잠이 들었다.


사실 지난 2주 간 가장 난처했던 건 인터넷 데이터 부족이었다. 남편은 올해 초에 터키에 사전답사를 다녀오며 투어리스트 심카드를 구입했었고 데이터만 충전해서 쓰고 있었는데 입국 후 이틀 정도가 지나서 느닷없이 심카드가 정지되었다. 알고 보니 투어리스트 심카드 유효기간은 3개월. 봉쇄령 기간에는 통신사도 모두 문을 닫아서 공항 밖에서는 심카드도 구할 수 없었다. 그 후로 나의 휴대폰은 우리 집의 공공재가 되었다. 잘 때를 제외하고 핫스폿은 늘 켜짐 상태였고 남편이 나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핫스폿 좀 다시 켜줘’. 매일 한국 시간(그리고 한국 인터넷 스피드를 쓰는 학생들)에 맞춰 온라인 수업을 하는 남편에게 인터넷의 부재는 일자리와 직결된, 너무 치명적인 악재였다. 남편이 수업을 하는 동안에 나는 휴대폰 없이 생활해야 했고 - 동시에 쓰다가는 그나마 느린 인터넷이 더 느려질까 봐 - 봉쇄령 때문이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는 잠시도 떨어질 수 없었다. 흩어지면 죽는다는 게 이런 상황에 쓰일 줄이야.


이렇듯 입국 후 며칠간 시급하게 필요한 생필품이 너무 많았다. 물론, 모든 걸 언젠가는 구할 수 있다. 봉쇄령이 문제지 (새벽배송 로켓배송 당일배송 인터넷 강국에서 온 나는 웁니다...)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사라지고 안되기 시작하면 내가 가졌던 '편리'가 축복이었음을 알게 된다. 별 것 아닌 것들, 하지만 내 일상에 당연하게 자리 잡았던 것들. 이를테면 집에 들어오면 와이파이가 자동 연결되는 것부터 시작해서 밤에 덮을 이불, 아기를 앉혀서 씻길 아기 욕조 (까지도 아니고 큼지막한 대야만 하나 있어도 참 편하겠다!), 아기 의자, 아기 물병을 씻길 세제와 솔 등...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없이 살아보니 너무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었다 (다시 한번 난 미니멀리스트로 살 수는 없다는 걸 여실히 깨달았다).


내가 느낀 불편함은 봉쇄령 종료일까지 라는 기한이 있는 불편함이긴 했지만 별 일 없이 사는 일상을 만들기 위해 새삼 공간과 적절한 물건의 조화가 중요함을 느꼈다. 이제 봉쇄조치가 끝날 때까지 이틀 남았다. 터키 도착하자마자 호된 신고식을 치렀으니 앞으로 조금은 더 편한 일상을 기대해봐도 좋을까?



[덧붙임] 

터키 페티예 이민 & 정착 과정을 브이로그로 담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하시다면 방문해주세요 :)
https://www.youtube.com/channel/UCoVEe8eHKqxNPPR34_2i_Uw/featur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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