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거나 말거나, 아직은 어렵지만

by 하쿠나

그때가 왔다. 퇴사 욕구가 요동치는 시기가. 나에게 그 시기는 대체로 입사 후 1년 6개월 차에 접어들면서 찾아온다.


매번 입사할 때는 저마다의 장점이 있어서 웬만하면 일할 수 있을 만큼 일해보자 마음먹는다. 하지만 일할 수록 비슷한 결의 어려움으로 퇴사 동기가 구체화된다.


현 직장에서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모든 소통과 업무를 영어로 해야하는 환경에서의 나 자신과의 싸움과 나 자신으로서 드러내지 못하겠는 위축감이다.


나의 벗 챗지피티 덕분에 사무적인 업무 처리는 어렵지 않게 되었지만, 영어로 의견을 내고 토론에 참여해야 할 때면 머리가 계속 버퍼링 되는 느낌이 든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하는 의식 속에서, 나는 끝없는 심해로 빠져드는 기분이 된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내가 하는 사소한 말과 행동까지도 불필요하게 검열하게 된다.


내 의견에 확신이 없고, 이 말을 했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눈치를 많이 보는 나는, 외부의 자극보다 내면의 짓누름이 더 힘겨워 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상담실에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는 왜 말 한 마디하는 것도 이렇게 힘을 들여야 할까요? 그룹 채팅방에 남기는 단순한 말 하나도 오만 가지 생각과 계산 끝에 겨우 남길 수 있어요. 어떤 때는 내가 너무 가볍게 보일까 봐, 어떤 때는 동료들의 속도를 못 쫓아갈까 봐, 또 어떤 때는 한 마디라도 남기지 않으면 무임승차하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한 줄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온전한 나로 머물기에는 힘든 직장이에요. 마음 둘 곳이 없는 곳 같아요.
사람들과의 대화가 거의 늘 어색하고 힘들어요. 잘 숨기고 있지만요. 회사에는 다들 똑똑하고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정치적 올바름에서 벗어난 말을 할까 봐 늘 긴장하게 돼요.”


지난 1년 동안 두 명의 상담 선생님과 상담을 진행했다. 마음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았던 순간도 있었지만, 기대했던 만큼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들의 말이 내 일상에 깊이 스며들지 못했고, 내 마인드를 바꾸기에는 힘이 부족했던 것 같다.


그래도 가끔 떠오르는 말들이 있다.


하쿠나님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혹은 회사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까 걱정할 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 — 그건 어디까지나 망상입니다. 혼자 만들어낸 생각일 뿐 사실이 아니에요. 누가 나를 판단할지도 모른다거나,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볼 거라는 짐작은 실체가 없어요.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망상이 더 크게 자라는 걸 멈출 수 있어요.”


그리고 또 하나.


그러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을 가져보세요. 망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요. 남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는 집착이 강해질수록 더 긴장하고 더 몸을 사리게 돼요. 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들의 생각일 뿐이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어요.


나는 완벽하지 않고, 당신 또한 완벽하지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 라는 생각을 해보세요.


약간의 각색이 있지만, 불안감이 떠오를 때 기억해보려고 건져낸 말들이다.


나는 여전히 나를 검열하고 있다. 여전히 말을 꺼내기 전에 버퍼링이 걸리는 탓에 말수가 적은 사람이고, 글을 남기기 전에 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그러거나 말거나’라는 말이 머리로는 이해되면서도 그렇게 온전히 마음먹고 행동하기에는 낯설다.


그럼에도 조금은 달라진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예전처럼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기 전에, ‘아, 또 내가 혼자 만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순간들. 완전히 멈추지는 못해도, 적어도 잠깐 멈추는 신호 같은 순간들.


최근 연애 프로그램을 보다가 마음에 남은 말이 있다. 출연자 중에 가장 솔직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였지만 가장 욕도 많이 들었던 (사실 개인적으로 욕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만) 출연자가 종영 소감을 말하면서 본인은 솔직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다채로운 삶이 정말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기에 후회 없고 감사하다는 게 골자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왜인지 모를 응원의 말을 들은 것 같았고 그 출연자의 가치관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완벽하지 않지만 나의 부족한 면을 조금 드러내며 살아가는 것은 다채로운 삶을 추구한다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텐션을 끌어올려 괜찮아 보일 때도 있고, 불안하고 떨리는 목소리의 진동과 위축된 표정이 숨겨지지 않는 날도 여전히 있지만 완벽하지 않은 나는 나대로 세상의 다채로운 색 중 하나라고 생각하면 되니까.


관계든 업무든 완전히 편안한 직장을 찾거나, 결코 불안감으로 흔들리지 않는 건강한 자존감을 갖춘 나로 변모할 날은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나를 검열하고 미워하는 대신, 모자람을 조금 드러내며 이게 나이고, 나는 완벽하지 않으며 당신도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게 오히려 해방감을 주는 방법일 거라고 되뇌어본다. 적어도 그게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은 마음보다는 조금 더 버텨보고 싶은 마음 쪽으로 향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그것이,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 더 다채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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