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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May 09. 2017

영화 리뷰 <보안관>

서부극에만 있던 '보안관' 완벽한 매력으로 한국에 상륙하다


'보안관'은 미국에서 각 행정 구역 최소 단위 지역의 치안을 담당했던 집행관을 말한다. 한국엔 없는, 미국 서부극에서나 볼 수 있던 '보안관'을 제목으로 붙인 이유는 무엇일까? <보안관> 김형주 감독의 씨네21 인터뷰에 따르면 제목은 제작을 맡은 윤종빈 감독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마약 사범일지도 모르는 남자를 추적하는 내용이나 주인공은 일반적인 수사물에서 볼 수 있는 경찰이 아닌 이야기를 구상하던 김형주 감독에게 윤종빈 감독은 '보안관'이란 제목을 제안했고, 그것을 듣는 순간 김형주 감독은 '로컬 수사극'이란 콘셉트를 잡았다고 한다. 그래서 <보안관>에는 한국에 존재하지 않기에 '특별한 집행자'라는 의미와, 외부의 적에 맞서 공동체를 지키는 '서부극의 보안관'이란 의미가 동시에 있는 셈이다.



전직 경찰 대호(이성민 분)는 "한번 뽕쟁이는 영원한 뽕쟁이", "대한민국에서 단시간에 돈 버는 건 간첩과 뽕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며 과거엔 마약 운반책이었으나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인 종진(조진웅 분)을 압박한다. 종진이 범죄에 연루된 흔적을 찾으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자 대호가 품은 합리적 '의심'은 과거 마약 사건을 수사하다가 부하를 잃었던 슬픔으로 인한 무책임한 '집착'으로 주위에 비친다.


누구도 의심치 않는 자에게 홀로 맞선다는 설정에서 <보안관>의 대호와 <공공의 적>의 강철중(설경구 분)은 닮았다. 둘 다 무모하면서 정의로운 외골수다. 또 현실의 벽에 강하게 부딪힌다. 마치 2000년대의 영웅 강철중을 2010년대의 대호가 계승한 느낌이다. 그러나 그들이 맞닥뜨린 사건을 묘사하는 방식은 다르다. <공공의 적>이 패를 깐 상태에서 벌어지는 처절한 대결을 그린다면 <보안관>은 쉽사리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 알쏭달쏭한 전개를 취한다.


<보안관>의 재미는 대호가 종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다. 종진의 뒤를 밟거나 그의 집을 몰래 뒤지고 회사를 수색하는 등 대호는 온갖 난리를 벌인다. 마지막에 펼쳐지는 지역 주민과 조폭의 대결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까지 극장가를 주름 잡던 조폭 코미디 장르가 보여주던 난리법석을 떠올리게 한다. 이런 소동극은 부산이란 배경, 걸죽한 사투리, 대호와 함께하던 처남인 덕만(김성균 분), 용환(김종수 분), 선철(조우진 분), 강곤(임현성 분), 춘모(배정남 분)의 우정, 배신과 어우러져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다.



<보안관>은 <공공의 적>의 캐릭터와 조폭 코미디 장르의 장면 외 서부극의 면도 지녔다. 모두 종진을 '좋은 놈'으로 보나 줄곧 '나쁜 놈'으로 의심하던 대호는 점점 '이상한 놈'으로 몰린다. 공동체의 적과 싸웠으나 도리어 소외된 보안관 대호에겐 서부극의 걸작 <하이 눈>의 설정이 감지된다.


매카시즘이 횡행하던 사회 분위기를 <하이 눈>이 포착했다면 <보안관>은 무엇을 담고 있을까? 해답은 종진이 지역 주민에게 개발을 부르짖는 인물이란 점에서 찾을 수 있다.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는 종진에게 저항하는 대호는 주위로부터 사라져야 할 인물로 배척당한다. 그는 더 이상 공동체의 영웅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보안관>엔 <영웅본색>의 영향도 짙게 깔려있다. 첫 장면에서 잠복근무하는 대호는 라디오에서 흐르는 <영웅본색>의 마크(주윤발 분)의 테마 음악을 듣는다. <영웅본색>을 비디오테이프로 보며 열광하는 장면도 있다. 마크가 뱃머리를 돌리고 총을 쏘며 돌아오는 장면은 오마주로 나타난다. <보안관>은 <영웅본색>의 의리와 낭만의 이미지를 투사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나아가 시대착오적인 인물로 몰리며 공동체 바깥으로 쫓겨나던 영웅이 귀환한다는 주제까지 공유하길 원한다. 홍콩과 <영웅본색>의 마크가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는 대호 같은 영웅이 필요하다.



김형주 감독은 <보안관>을 "동네 보안관을 자처하는 오지랖 넓은 사내가 자기 눈엔 마약 범죄자로 보이는 남자로부터 마을을 지키려는 '고군분투기'이고, 한편으론 희미해져 가는 자신의 남성성을 증명하고자 끝없이 몸부림치는 한 중년 사내의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보안관>은 지역색이 물씬 풍기는 부산 히어로의 활약상과 아재파탈의 매력을 보여준다. 동시에 깊다고 외치나 실상은 얕은 남자의 우정, '후까시'로 일컬어지는 겉멋, 강한 육체를 흠모하는 땀내로 가득하다.


이런 요소들의 충돌로 웃음을 빚은 제작사는 이름부터 인상적인 '사나이픽처스'다. <신세계>를 시작으로 <남자가 사랑할 때> <무뢰한> <대호> <검사외전> <아수라>까지 남성 캐릭터를 열심히 탐구한 사나이픽처스는  때론 '개저씨'와 '알탕'이란 비아냥거림도 들었으나 굴하지 않고 '다양한 남성 영화'에 매진하며 자신만의 색깔을 다져왔다. 그리고 <보안관>으로 코미디 장르의 성취를 얻었다. 많은 이가 회색빛 두루뭉술한 영화를 만들 때에 사나이픽처스는 흑과 백이 선명한 개성 만점의 영화를 내놓았지 않나. 사나이픽처스야말로 한국 영화계의 '보안관' 같은 존재다.


20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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