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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May 02. 2021

영화 리뷰 <더 터널>

실화 바탕의 터널 속 끔찍한 광경... 이걸 왜 넣었을까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소방관 스테인(토르베에른 하르 분)은 여자친구 잉그리드(리사 카를레헤드 분), 딸 엘리서(일바 퍼글러루드 분)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하지만, 엘리서는 아빠가 세상을 떠난 엄마를 잊은 걸로만 느껴져 화가 치민다. 아빠의 제안을 물리친 엘리서는 홀로 오슬로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해발 950m 산속에 위치한 9km에 달하는 터널 안에서 기름을 가득 실은 유조트럭이 벽에 부딪히며 폭발하는 사고가 벌어진다. 터널에 있던 사람들은 칠흑 같은 어둠과 자욱한 연기로 인해 진퇴양난에 처하고 설상가상으로 눈보라와 폭설로 인해 구조 작업은 어려움을 겪는다. 엘리서가 터널 안에 갇혔다는 소식을 접한 스테인은 붕괴의 위험을 무릅쓰고 홀로 구조에 나선다.


영화 <더 터널>은 쓰나미를 다룬 <더 웨이브>(2015), 지진의 위험을 그린 <더 퀘이크: 오슬로 대지진>(2018)를 잇는 노르웨이산 재난 블록버스터다. 노르웨이에선 개봉 당시에 7주간 박스오피스 10위권에 들며 흥행에 성공했다.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노르웨이에선 2011년 이래로 터널에서 8번의 화재 사건이 났다는 설명과 이런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했음을 밝혀 앞선 재난 영화들보다 현실적임을 강조한다. 메가폰은 <빌마크>(2003), <히든>(2009), <빌마르크 어사일럼>(2015)을 연출한 바 있는 팔 오이 감독이 잡았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가상의 터널을 배경으로 비상구가 없는 터널에서 화재가 벌어지는 재난 상황을 만든 후 그 곳에 갇힌 사람들의 절망적인 모습을 그린다. 이후 전개는 여타 할리우드 재난 영화와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을 용감한 영웅이 구한다는 기본적인 공식에 충실한 편이다. 


<더 터널>은 비슷한 소재를 다루었던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데이라잇>(1996), 하정우가 주인공이었던 <터널>(2017)과 비교해 캐릭터 묘사에서 확연한 차이점도 나타낸다. <더 터널>은 한 인물이 아닌, 여러 사람을 고루 조명한다. 


영화는 아빠 스테인을 중심으로 한 동료 소방관들, 딸 엘리서를 비롯한 생존자들 외에 잉그리드, 교통통제센터의 안드레아(잉빌 홀테 비그드네스 분) 등 다양한 인물을 소개하는 데 상당한 공을 들인다. 그리고 재난이 벌어진 다음에도 이들의 시점을 바삐 오간다. 


재난보다 캐릭터를 강조하는 <더 터널>의 선택은 실패에 가깝다. 등장인물이 지나치게 많은 탓에 개인의 서사는 수박 겉핥기에 머문다. 기본 축으로 삼은 스테인과 엘리서의 가족애조차 와 닿질 않을 정도다. 


게다가 인물을 중구난방으로 넘나들어 산만함이 상당하다. 특히 아들을 학대하는 백인 부동산 중개인을 중심으로 한 군상은 설정뿐만 아니라 대사도 이상하다. 진지함을 잠시 벗어나거나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했던 걸까? 영화에 왜 넣었는지 쉬이 이해가 가질 않는다.
  


터널 안팎의 묘사는 대단하다. 할리우드에 비해 규모는 작을지언정 사실감은 확실하다. 유독가스가 터널 안에 퍼지며 사람들을 질식시키는 광경은 실로 참혹하다. 스테인과 엘리서는 불길과 유독가스로 휩싸인 터널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려준다. 안드레아는 사고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역할이면서 재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정확한 정보 전달과 빠른 판단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생히 보여준다.


노르웨이의 풍경과 겨울은 또 다른 볼거리이자 두려움이다. 비상구조차 없는 터널 안이 밀실 공포 상태라면 기후 악화로 인하여 구조대의 접근의 수월하지 않은 터널을 둘러싼 상황 역시 밀실 공포 상태와 다름이 없다. 


<더 터널>은 도입부에 넣은 자막을 통해 "노르웨이에는 비상구가 없는 1100개의 터널이 있다"고 밝힌다. 이어서 "노르웨이 터널에서 안전은 개인에게 달렸다"고 꼬집는다. 지금까진 용감한 시민과 소방관, 우연의 덕분으로 큰 인명 피해가 없었지만, 언제라도 영화 속 끔찍한 재난이 벌어질 수 있으니 대비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정부가 귀 기울여야 함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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