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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May 02. 2021

영화 리뷰 <아일로>

태어난지 10분 만에 걸어야 하는 순록... 대자연의 역사


순록은 산타클로스 전설에서 하늘을 날며 썰매를 끄는 동물로 유명하다. 그런데 현실에서 사슴과의 포유류인 순록은 어떻게 살까? 다큐멘터리 영화 <아일로>는 빙하기의 흔적을 간직한 북극권 라플란드를 배경으로 아기 순록 아일로의 탄생과 성장, 그리고 약육강식과 계절의 변화 속에서 스스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다룬다. 


제작은 <숲의 전설>(2012), <호수의 전설>(2016)로 역대 핀란드 다큐멘터리 흥행 기록을 갱신한 핀란드의 자연 다큐 전문 제작 스튜디오 MRP가 맡았다. 메가폰은 내셔널지오그래픽, 프랑스 국영방송 등과 함께 작업해 온 야생동물 생태계 전문 작가이자 연출가인 기욤 미다체프스키 감독이 잡았다.


<아일로>는 아기 순록 '아일로'를 비롯한 청설모, 레밍, 북극여우, 담비, 올빼미, 늑대, 족제비, 토끼, 울버린 등 북극에 사는 다양한 동물들과 태고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라플란드의 자연을 담았다. 2017년 5월부터 2018년 6월까지 13개월에 걸친 기간 동안 촬영 분량만 총 600시간에 달했다는 후문이다.
  


<아일로>는 TV에서 흔히 접하는 자연 다큐멘터리처럼 동물을 의인화한 화법을 사용한다. 순록 아일로의 여정에서 만난 생태계의 모습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펼쳐진다. 기욤 미다체프스키 감독은 동물들의 자연적 본능을 통해 각 동물 캐릭터의 개성을 드러내려 했다고 밝힌다. 


동물들의 먹이사슬 관계는 편견을 갖지 않도록 '착한 순록, 나쁜 늑대'같은 단순한 선악 구도로 나누지 않았다. 굶주린 새끼들을 위해 먹잇감을 찾는 어미 늑대의 모습을 드러내는 식으로 각각의 동물에 입체성을 부여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사냥 당한 동물의 죽음 등 다소 잔혹할 수 있는 장면은 보여주질 않는다.


라플란드의 자연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영화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청정지역 라플란드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담겨 있다. 빙하 침식으로 만들어진 깊은 골짜기 '피요르', 침엽수림으로 구성된 숲 '타이가' 등 라플란드와 대자연과 북극 오로라의 광경은 보는 이의 숨을 멎게 할 정도로 경이롭다. 영상만으로도 <아일로>를 볼 가치는 충분하다.

  

 
아기 순록 아일로는 태어나자마자 5분 만에 서고 10분 만에 걸으며 15분 만에 달려야 한다. 자연의 법칙에 따르는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대자연의 역사는 이어져 왔다. 


인간은 자연이 정한 질서를 무너뜨리며 동물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이다. 아일로가 예정보다 일찍 태어난 건 인간이 초래한 기후변화 때문이다. 지나친 벌목으로 인하여 동물들은 터전을 잃었다. 인간이 만든 도로들은 동물들이 수천 년 동안 이동했던 길을 지워버렸다.


<아일로>는 아기 순록 아일로의 성장담이다. 순록의 삶에서 찾은 자연의 섭리와 순환을 재미있고 호소력 넘치게 들려준다. 또한, 인간이 저지르는 무분별한 환경 파괴를 비판하고 멸종되어가는 종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자연 다큐멘터리이기도 하다.

  

 
<아일로>의 오리지널 내레이션은 프랑스의 인기 가수 알데베르가 맡아 아빠가 옛이야기를 들려주듯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영화 속 동물들의 이야기를 전하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영어 내레이션은 명배우 도널드 서덜랜드가 맡아 멋진 연기력을 발휘했다. 


한국어 내레이션은 인기 영화 유튜버 고몽이 참여했다. 수입사가 홍보 목적으로 고몽을 캐스팅한 건 이해가 가지만, 그의 더빙은 감정 표현이 제대로 되질 않아 감상에 방해만 되었을 따름이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성우, 또는 목소리 연기가 가능한 배우나 가수가 맡았다면 작품이 더욱 빛났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19년 이탈리아 로마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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