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이란계 미국인 부부인 바박(샤하브 호세이니 분)과 네다(니오샤 자파리안 분)는 친구들과 가족 모임을 마친 후 귀갓길에 오른다. 술을 마신 바박은 면허가 정지된 네다를 대신해 운전대를 잡았다가 내비게이션이 오작동을 일으키며 길을 잃어버린다. 설상가상으로 아내와 말다툼을 벌이다 사고까지 낼 뻔한 바박은 가까운 호텔에서 하룻밤 묵자고 말한다.
노르망디 호텔에 간 바박과 네다는 호텔 직원(조지 맥과이어 분)의 안내를 받아 414호실에서 한 살배기 딸을 눕힌 후 이내 잠이 든다. 그런데 이상한 현상이 하나둘 일어나기 시작하며 두 사람은 공포에 휩싸인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마이클 그레이엄 분)은 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샤이닝>(1980)의 '오버룩 호텔', < 1408 >(2007)의 '돌핀 호텔', <인키퍼>(2011)의 '양키 대들러 인 호텔'은 호텔의 방과 복도를 배경으로 삼아 오싹한 분위기를 연출한 작품들로 유명하다. 이 영화들에서 호텔은 이승과 저승 사이에 위치한 초현실적인 공간으로 기능하며 주인공의 심리를 옥죄었다. 영화 <더 나이트>도 호텔이 배경인 공포 영화다.
<더 나이트>는 오래된 호텔에 하룻밤 묵게 된 가족이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갇히게 되고 서로에게 숨겼던 비밀에 직면한다는 내용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 속 노르망디 호텔이 가상의 공간이 아닌, 실제 로스앤젤레스에서 100여 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명물이란 점이다. 호텔이 영업을 계속하는 관계로 늦은 밤에 로비를 빌려 17일 만에 영화를 찍었다는 후문이다. 연출은 단편 영화 <더 시크릿 오브 40>(2016)과 장편 영화 <더 옐로우 월페이퍼>(2015), <제니레이션스>(2018)를 만든 바 있는 코우로시 아하리 감독이 맡았다.
최근 이란 또는 이란인이 나온 호러 영화론 이란-이라크 전쟁이 배경인 <어둠의 여인>(2016)과 이란 사람들이 나오는 <밤을 걷는 뱀파이어 소녀>(2014)가 있었다. 이들 영화는 전쟁의 상흔과 초자연적인 우화를 공포 장르에 접목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란인이 주인공인 <더 나이트>는 유령이 나오는 호텔을 무대로 초현실적인 해석과 현실적인 해석이 모두 가능한 호러 영화다.
<더 나이트>는 <샤이닝>에 많은 빚을 진다. 두 영화 모두 어린 자녀를 둔 부부가 유령이 나오는 호텔에 갇힌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유사점이 많다. <더 나이트>에서 부부가 복도에서 목격하는 정체불명의 소년 장면은 <샤이닝>의 복도에 나타나는 쌍둥이 소녀 장면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더 나이트>의 호텔 직원은 <샤이닝>의 바텐더를 연상케 한다.
그렇다면 <더 나이트>는 <샤이닝>의 아류작에 불과할까?그렇지 않다. <더 나이트>는 바박과 네다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다. 바박은 네다보다 5년 먼저 이란에서 미국에 건너왔다. 그 기간 동안 두 사람은 각자의 비밀이 만들었다. 이것이 노르망디 호텔에서 현실과 환상을 오가는 심령적인 형태로 드러난 것이다. 두려움을 형체화한 <바바둑>(2014)처럼 말이다. 서로를 속이는 '마피아 게임', 지울 수 없는 '문신', 왜곡된 형태를 비추는 '거울', 르네 마그리트의 '금지된 재현'을 변형한 '그림' 등 영화 속에 배치된 장치들은 인물의 죄의식과 이중성을 한층 강화시켜 준다.
<더 나이트>는 이란계 미국인들이 느끼는 심리를 그들의 시각에서 조명한 작품이기도 하다. 호텔 직원과 백인 경찰에겐 무슬림을 향한 적대적인 반응이 묻어난다. 호텔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으로 인한 공포엔 이들 부부가 영어에 능하고 안정된 부와 지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국 사회에서 느끼는 불안과 이란과 미국 양쪽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정체성의 문제가 스며들어 있다. 문밖에 서있는 존재로 인한 두려움은 미국 사회에서 유색 인종이 느끼는 위험과 다를 바가 없다. 존재에 인종차별주의자를 대입해보라.
'길을 잃은' 부부의 모습은 장르를 위한 초자연적인 설정이다. 동시에 미국으로 이주한 이란 사람이 적응하지 못하거나 또는 거부당하는 현실을 은유한 설정이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더 나이트>는 난민 문제를 귀신 들린 집에 녹인 <그 남자의 집>(2019)과 상당히 닮았다.
<더 나이트>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몇 명 되지 않는다. 대부분 분량은 바박과 네다가 소화한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2011), <세일즈맨>(2016)으로 친숙한 샤하브 호세이니와 단편 영화와 TV 드라마에서 활동한 니오샤 자파리안은 초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캐릭터에 현실적인 감정을 훌륭히 불어넣었다. 노숙자(엘레스터 라댐 분), 경찰, 호텔 직원은 분량은 짧지만, 좋은 연기력을 통해 불길함과 신비함을 증폭시킨다.
<더 나이트>는 이란과 이란계 미국인들이 배우와 스태프로 참여했다. 대사 역시 일부만 영어일 뿐 주로 페르시아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1979년 이란 혁명 이후 처음으로 극장의 상영 허가를 받은 미국 제작의 영화이기도 하다. 이란 영화인들도 제작에 힘을 보탰다.
이런 협력을 보노라면 <더 나이트>는 단순한 영화 한 편의 의미를 넘어선, 향후 미국과 이란 사이의 대립을 해소할 시금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국과 이란의 영화인들이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것처럼 두 나라의 정치인들도 갈등을 멈추고 친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제35회 시체스 영화제 판타스틱 파노라마 부문 초청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