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앞에 침묵하는 자들에게 던진 분노의 외침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진압군으로 투입되었다가 전역한 후 굴착기 운전사로 일하는 강일(엄태웅 분). 어느 날 작업을 하던 도중에 땅속에 묻혀 있던 백골을 발견하며 잊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과거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던 강일은 20여 년 전에 진압군으로 함께 참여했던 동기와 상사를 만나며 그날, 그곳에 자신이 가야만 했던 이유를 묻기 시작한다.
<포크레인>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에 공수부대원으로 진압에 동원됐던 강일이 동료들을 찾아가는 구성을 취한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알코올중독자, 은행 직원, 경찰, 사업체 사장, 스님, 국회의원이 되어 오늘을 사는 동기와 상사 앞에 불쑥 나타난 강일은 과거를 환기하는 자이며 진실을 캐묻는 불편한 존재다.
메가폰을 잡은 이주형 감독은 "누구나 인생을 살며 다양한 역할들을 주고, 때론 그 역할에 의해서 의지와 상관없이 여러 가지 아픔을 겪게 된다"며 "잊으려 했던, 잊어야만 살아갈 수 있었던 슬픈 이야기가 될 수 있겠지만, 영화를 통해 바라보는 용기를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영화를 만들었다"고 연출 의도를 설명한다.
<꽃잎> ,<화려한 휴가> ,<오래된 정원>, <스카우트>, <26년>, 최근에 만들어진 <택시운전사>까지 영화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여러 각도로 조명한 바 있다. <포크레인>은 <박하사탕>처럼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된 자들을 보여준다. 시대의 상처가 어떻게 삶에 반영되었고 어떤 모습으로 그들을 변화시켰는지 바라본다. 그리고 그들의 상처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지 묻는다. 이주형 감독은 질문의 여정 <포크레인>을 "지금 이 시기에 마땅히 할 이야기"라고 강조한다.
"우리를 왜 그곳에 보냈습니까?"를 묻는 강일의 여행은 자신 또는 타인에게 해답을 찾는 과정이자 진실을 묻는 노정이다. 그와 동기, 상사의 만남 속엔 죄를 용서받고 싶어 하는 몸부림과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는 태도가 모두 드러난다.
'포크레인'(굴착기)은 영화 속에서 다양한 은유를 지닌 장치로 기능한다. 땅을 파는 굴착기는 은폐되었던 진실을 파헤치는 행위와 연결된다. 오래된 차체가 주는 질감은 세월 속에 묻힌 그 날의 아픔을 연상케 한다. 육중한 몸집으로 느리게 이동하는 포크레인은 탱크와 흡사한 구석이 많다. 그 외에도 포크레인은 어떤 이에겐 상처를 치유하는 손길로 작용하고, 뻔뻔한 태도로 자기 행동을 이야기하는 자에겐 응징을 가하는 주먹이 된다. 더욱 큰 포크레인이 앞을 가로막을 때엔 현실의 벽처럼 느껴진다.
<포크레인>은 <영화는 영화다> ,<풍산개> ,<배우는 배우다>, <붉은 가족>, <신의 선물>, <메이드 인 차이나>에 이어 김기덕 감독이 일곱 번째로 각본, 제작에 나선 작품이다. <붉은 가족>에서 이미 김기덕 감독과 협업을 했던 이주형 감독은 "<포크레인>은 김기덕 감독님이 5년 전부터 준비를 했던 작품"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김기덕 감독은 <포크레인>을 찍기 위해 극 중에 나오는 굴착기를 이미 사놓았을 정도로 열의가 대단했다고 전한다.
<붉은 가족>과 마찬가지로 <포크레인>엔 김기덕 감독의 색깔이 깊숙이 배어있다. <붉은 가족>이 <풍산개><그물>과 맥을 같이 하는 김기덕식 남북 우화라면 <포크레인>은 <일대일><스톱>과 호흡을 함께 하는 김기덕 스타일의 사회파 영화다. <일대일>에 준 이화정 <씨네21> 기자의 "지금 대한민국을 향한 수식 없는 직설화법"이란 평가는 <포크레인>에도 유효하다. <포크레인>은 김기덕 감독과 이주형 감독이 던지는 거침없는 분노의 외침이다.
영화에서 강일의 추궁에 어떤 이는 "질문에 답할 사람은 한 사람밖에 없어"라고 대답한다. 한 사람은 누구나 알 듯 전두환 전 대통령을 가리킨다. 역사에 큰 죄를 저질러 처벌까지 받았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현재 일베 등 일부 수구 세력에게 '전땅크'나 '엔두(엔젤두환)'로 칭송을 받는 위치로 변했다. 진짜 가해자인 전두환 전 대통령은 최근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하여 이렇게 기술했다.
"5·18 사태의 발단에서부터 종결까지의 과정에서 내가 직접 관여할 일이라는 것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포크레인>과 <택시운전사>는 역사 앞에 침묵하는, 도리어 거짓으로 일관하는 그(들)에게 다시금 목소리를 높인다. 영화는 그(들)에게 외친다. 그날의 진실을 이야기하라고, 그리고 참회하라고.
2017.7.28
영화칼럼니스트 이학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