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세계에서 찾은 다름과 쓸모의 가치
장난감, 자동차, 동물, 로봇을 의인화한 <토이스토리>,<벅스라이프>,<카>,<니모를 찾아서>,<월-E>,<주토피아>를 들려줬다. 동화의 나라에서 영토를 넓혀 몬스터의 세계를 그린 <몬스터 주식회사>와 게임의 세계로 들어간 <주먹왕 랄프>를 내놓기도 했다. 최근엔 감정의 세계를 다룬 <인사이드 아웃>으로 사랑받은 바 있다.
<몬스터 호텔>,<개구쟁이 스머프>,<하늘에서 음식이 내린다면>으로 유명한 소니 픽처스 애니메이션의 신작 <이모티: 더 무비>도 '스마트폰'으로 여행을 떠난다. 먼저 '이모티'란 용어에 관해 설명이 필요하다. 감정(emotion)과 유사기호(icon)가 합쳐진 '이모티콘(emoticon)'은 컴퓨터, 휴대전화 등에서 문자, 숫자, 기호 등을 조합하여 감정을 표시하는 기호를 뜻한다. '이모티'는 이모티콘을 그림으로 발전시킨 형태로 1999년 일본 통신사 NTT토코모의 연구원에 의해 처음 개발되었다고 한다. 우리에겐 카카오나 라인 등에 사용되는 이모티가 친숙하다.
<이모티: 더 무비>에서 이모티들은 스마트폰 속 세계 '텍스트폴리스'에 산다. 이모티에게 가장 중요한 원칙은 1인 1표정. 각자 맡은 하나의 표정을 완벽히 수행해야 하는 시스템에서 무미건조한 '뭐' 표정을 지어야 하는 진(T.J. 밀러 목소리)은 그만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 실수를 범한다. 시스템 관리자 스마일(마야 루돌프 목소리)은 혼란을 막을 요량으로 백신봇을 출동시켜 진을 제거하려 한다. 진은 백신봇의 위협을 피해 친구 하이파이브(제임스 코든 목소리)와 해커 핵키 브레이크(안나 페리스 목소리)와 함께 자신의 운명을 구하는 여행을 떠난다.
<이모티: 더 무비>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스마트폰 세계의 묘사다. 스마트폰 주인인 알렉스(제이크 T.오스틴)가 특정한 이모티를 선택하면 시스템 운영자가 박스에 대기하던 이모티의 표정을 스캔하고 결과가 폰의 화면으로 전송되는 방식엔 만화다운 상상력이 가득하다. 스마트폰을 매개체로 안과 바깥을 연결하는 <이모티: 더 무비>의 설정에선 <인사이드 아웃>의 영향도 짙게 느껴진다.
<주토피아>의 세상을 연상케 하는 면도 있다. 이모티들은 스마트폰 안에서 <주토피아>의 동물들처럼 도시를 세우고 살아간다. 영화 속 스마트폰 세상에서 이모티들의 도시만 만나는 건 아니다. 페이스북, 위챗,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의 앱도 도시로 등장한다. 이모티는 바탕화면으로 나와 다른 앱으로 이동한다. 한곳엔 버려진 앱이 모인 휴지통도 보인다. 바이러스, 스팸 등 해적 앱이 함께 하는 술집에서 "여기서 불법 다운로드 받으세요"란 문구가 나올 땐 절로 웃음이 터진다.
다양한 배우들이 목소리 연기에 참여한 패트릭 스튜어트와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유독 눈길을 끈다. <엑스맨> 시리즈의 '찰스 자비에' 교수 역으로 유명한 패트릭 스튜어트는 이모티 '떵' 역할로 분해 허세 작렬 연기를 보여준다. 다른 존재를 '오류'로 판단하고 제거하는 <이모티: 더 무비>가 <엑스맨>의 돌연변이를 대하는 인간과 유사하다는 사실도 흥미롭다. 백신봇의 모습이 <엑스맨>의 센티넬과 묘하게 닮은 것은 우연일까? 세계적인 팝가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는 극 중에서 '저스트 댄스 앱'의 메인댄서 아키코 글리터를 맡았다. 그녀는 자신이 피쳐링한 핏불의 'Feel This Moment(필 디스 모멘트)'로 재미를 선사한다. 그 외에 조지 마이클의 명곡 "Wake Me Up Before You Go-Go(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 등의 팝송도 귀를 즐겁게 한다.
<이모티: 더 무비>가 현대 사회를 은유하는 점도 눈여겨봄직 하다. 영화에서 시스템 관리자는 1인 1표정이 아닌 이모티는 틀림으로 간주한다. 이것은 우경화되는 세계 분위기를 반영한 전개다. 현대 사회의 쓸쓸한 이면도 감지된다. 알렉스는 더는 쓸모없어진 앱은 휴지통에 바로 버린다. 우리처럼 말이다. 여기엔 부속품처럼 사용되다가 가차 없이 버려지는 현대인의 삶이 겹쳐진다. 이런 면에서 보자면 <이모티: 더 무비>는 <주토피아>,<인사이드 아웃>의 외형보다 <토이 스토리>,<주먹왕 랄프>의 정서에 가깝기도 하다.
<이모티: 더 무비>는 현재 로튼토마토 평점 8%에 기록하며 미국에서 망작 취급을 받는 상황이다. 다수가 부정적인 평가를 한 가운데 평자 데이비드 카플란은 "애니메이션 상을 받을 수준은 아니더라도 여러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는 모험적인 아이디어"란 긍정적 평가를 했다. 그의 말처럼 <이모티: 더 무비>의 스마트폰은 모험적인 구석이 있다. '다름'과 '쓸모'의 가치를 역설하는 내용도 준수하다. 희대의 졸작으로 치부 받을 영화는 절대로 아니다.
2017.7.31
영화칼럼니스트 이학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