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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Sep 01. 2017

영화 리뷰 <페니 핀처>

‘이보다 더 짠돌이일 순 없던’ 남자의 변화담


전기세를 절약하려 창문 밖 가로등을 전등 삼아 지내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도 아까워 기어코 먹는 구두쇠 프랑수아(대니 분). 지나치게 인색한 탓에 주위의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돈이 쌓인 통장을 벗 삼아 독신으로 지내던 그의 앞에 어느 날 천사 같은 여자 발레리(로렌스 아르네 분)가 나타난다. 발레리에게 호감을 느끼던 와중에 그간 존재를 몰랐던 딸 로라(노예미 슈미트 분)가 갑작스레 등장하며 상황이 묘하게 굴러간다. 게다가 로라의 엄마는 아빠 프랑수아가 수전노인 사실 차마 털어놓기 힘들어 알뜰하게 아껴 멕시코의 보육원을 후원하는 독지가라고 거짓말을 했다. 평범하게 굴러가던 프랑수아의 삶은 발레리와 로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페니 핀처>의 원제는 < Radin! >으로 프랑스어로 인색한 사람을 뜻한다. 영어 제목인 '페니 핀처(Penny Pincher)'도 구두쇠를 일컫는 단어. 제목 그대로 자린고비의 삶을 다룬 <페니 핀처>는 2016년 프랑스 전체 흥행수익 16위를 기록하고 할리우드 영화를 제외한 자국 영화론 4번째로 높은 성적을 거두었다. 수전노 프랑수아의 이야기가 많은 사랑을 받은 비결은 무엇일까?



보통 구두쇠의 대명사론 <크리스마스 캐롤>의 스크루지가 유명하다. 성장하면서 남들에게 인색한 사람으로 변한 스크루지와 달리, <페니 핀처>의 프랑수아는 선천적으로 구두쇠 DNA를 가진 사람이다. 지름신을 이기지 못하고 마구 충동구매를 하던 아버지를 보며 임산부였던 엄마는 배 속에 있던 프랑수아에게 "절대로 아빠를 닮지 마라"고 줄곧 이야기했다. 태교로 말미암아 생긴 프랑수아의 지나친 절약 정신. 프랑수아는 모태 구두쇠인 셈이다.


프랑수아는 자신의 인색함이 남들과 멀어지게 만드는 원인이란 걸 안다. 그는 언제나 혼자라서 외롭지만, 어느새 아끼고 또 아끼는 생활을 반복한다. 사실상 강박증에 가까운 프랑수아의 일상은 스크루지보단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의 멜빈(잭 니콜슨 분)이나 <플랜맨>의 정석(정재영 분)에 가깝다.


연출을 맡은 프레드 카바예 감독은 프랑수아를 "어찌 보면 비호감인 캐릭터가 끌어내는 웃음을 전하고 싶어서 구두쇠를 택했다"라고 설명한다. 프랑수아의 짠 내 나는 근검절약 분투기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마트에 할인 쿠폰을 가지고 가는 것은 기본. 그는 아예 직원 옆에서 계산기를 같이 두드리는 철두철미함을 보여준다. 초인종의 전기마저 아까워 종을 사용하는 모습은 절로 혀를 내두르게 한다.


'이보다 더 짠돌이일 순 없는' 프랑수아의 절약 매뉴얼을 위해 제작진은 세트, 조명, 의상에 심혈을 기울였다. 전대미문의 구두쇠를 완성하기 위해 프랑수아를 연기한 대니 분은 3개월에 걸친 촬영 기간 내내 단 한 벌의 의상으로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터틀넥과 유행이 지난 낡은 재킷을 프랑수아의 의상으로 정한 이유는 약 살 돈도 아끼기 위해 감기에 걸리는 것조차 민감한 캐릭터의 성격을 반영한 설정이란 후문. 프랑수아의 집은 단 한 번도 가구를 바꾼 적이 없을 것 같은 캐릭터의 성격을 자연스럽게 드러내기 위해 낡고 어두운색의 가구를 놓았다.



<페니 핀처>는 <크리스마스 캐롤>,<플랜맨>,<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처럼 마냥 밉상이던 인물이 어떤 인물 또는 사건을 접하면서 내면의 갈등을 겪고 새로이 태어나는 서사를 따른다. 프랑수아를 단순히 구두쇠의 모습으로 웃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 점차 변화하고 성장하는 다층적이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로 만든 원동력은 배우 대니 분에게서 나온다.


대니 분은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너무 좋았다. 마치 '이거 절대 놓치면 안 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라고 고백할 정도로 캐릭터에 애정을 표시했다. <슈퍼처방전>에서 건강염려증 환자 역할을 소화한 대니 분은 이번엔 절약 강박증에 시달리는 프랑수아를 멋들어지게 소화한다.


 

프레드 카바예 감독이 연출한 <애니씽 포 허>,<포인트 블랭크>,<더 체이스>는 국내 극장가에 정식으로 소개되었다. <포인트 블랭크>는 류승룡 배우의 <표적> <애니씽 포 허>는 러셀 크로우의 <쓰리 데이즈>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전작들에서 범죄 스릴러의 정취가 짙게 풍겨서인지 코미디 장르인 <페니 핀처>는 다소 당혹스럽게 다가온다.


그러나 프레드 카바예 감독은 과거 <미녀들의 전쟁>의 각본을 쓰며 코미디 작법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최근엔 불륜을 테마로 한 옴니버스 영화 <플레이어스>에서 프롤로그를 맡아 웃음을 매조지는 연출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코미디야말로 제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장르이며 영화 쪽으로 저를 이끈 것 역시 코미디"라고 프레드 카바예 감독은 말한다.


<페니 핀처>는 오늘날 스크루지가 산다면 어떤 절약 생활을 할 것인지 보여준다. <슈퍼처방전>과 형제처럼 닮은 부분도 많기에 비교해서 보는 맛도 쏠쏠하다. 하나의 장르에 묶여있던 감독이 새로운 재능을 꽃피운 무대이기도 하다. 엉뚱한 웃음을 선사하면서 동시에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온기도 담은 <페니 핀처>. 여러모로 곱씹는 맛이 있는 영화다.


2017.8.28

영화칼럼니스트 이학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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