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국 호러가 거둔 중요한 수확" 전적으로 동의한다
허름한 아파트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현진(박지수 분)이 이사를 온다. 재개발을 추진하는 아파트는 음울한 기운을 풍기고 주민들은 이상한 행동을 거듭한다. 어느 날 현진은 우연한 계기로 옆집에 사는 여고생 주희(이빛나 분)의 공부를 돕게 된다. 주희 가족의 은밀한 이야기와 아파트에서 일어났던 일을 나누면서 친해진 두 사람. 그러나 현진은 주희의 수상쩍은 행동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 주희와 관련된 동네 사람들이 살해당하자 현진의 의심은 깊어지고 사건을 들은 주민센터의 사회복지담당 박 주무관(장소연 분)은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한 사람을 떠올리며 아파트로 향한다.
<사월의 끝>의 연출과 각본을 맡은 김광복 감독은 IMF 시절로부터 10년이 흐른 후를 다룬 기획기사를 보면서 영화를 구상했다고 말한다. 당시 기사를 보고 IMF 시절을 돌아보며 어른들을 중심에 놓지 않고 어린이들은 어떤 환경에서 자라게 되었을까 고민이 시작되었고 "국가적 불행이 개인에게 옮겨가고, 그게 자녀들에게 상속하는 게 전염병처럼 느껴졌다"고 감독은 밝혔다.
영화의 제목은 한수산 작가의 소설 <사월의 끝>에서 가져왔다. 소설에 나오는 사월의 이미지에서 아름다운 계절과 대비되는 심상치 않은 긴장감을 느낀 감독은 "4월은 하늘만 바라봐도 아름다운 계절이지만 목련이 폈다가 갑자기 져버리듯 아름다운 시절이 갑자기 끝나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느낌을 준다"라는 뜻으로 <사월의 끝>이란 제목을 붙였다고 설명한다.
<사월의 끝>은 현진, 주희, 박 주무관 세 명의 인물을 통해 불행마저 상속되고 전염되는 사회에서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것인지 들려준다. 흥미로운 점은 세 사람을 분리하지 않고 겹쳐지게 하는 미스터리한 문체를 쓴다는 사실이다.
영화에서 현진, 주희, 박 주무관은 개별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한 인물의 과거, 현재, 미래로 겹쳐지기도 한다. 영화 속에 나오는 '각설탕'은 인물의 모호함을 더한다. 복도를 오가는 돼지, 벽을 통해 들려오는 기이한 소리 등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런 요소를 재료 삼아 호기심을 자극하는 <사월의 끝>을 보노라면 의문이 점점 커진다. 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일까? 영화의 끝은 어디일까? 다음이 무척 궁금하다. 어서 페이지를 넘기고 싶은 스릴러 소설처럼 말이다.
<사월의 끝>은 현진과 주희가 사는 아파트를 정서를 묘사하는 공간으로 활용한다. 어두운 조명, 음산한 공기, 기이한 질감으로 가득한 아파트는 벗어날 수 없는 힘을 강하게 내뿜는다. 경제적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한 가족의 몸부림,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 싶은 간절함 같은 계급적, 사회적 욕망은 영화 속 아파트에 짙게 투영된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빠져나가고 싶으나 현실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계속 숨을 조여올 따름이다.
김광복 감독은 전북지역 아마추어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 잡지 <아모르>와 인터뷰에서 "우리는 공포영화 하면 그냥 무서운 영화라고 생각하나 장르 자체가 대단히 전복적이고 위험하고 불온하다"라고 공포영화를 정의하며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는 직접 사회를 비판하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는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사월의 끝>이 사용하는 불길한 화법은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큐어>, <회로>를 떠올리게 하는 구석이 많다. <사월의 끝>은 환상 문법의 필체로 관객을 이끈다. 보여주지 않고 감추면서 육감을 건드린다. 그 속에서 한국에 내재한 불안과 공포를 끌어낸다. 단순한 시각이나 청각 효과에 의존하지 않고, 기묘한 분위기를 만들면서 사회를 끄집어내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문법을 김광복 감독은 자기 것으로 훌륭히 소화했다.
<사월의 끝>의 완성도는 <소름>,<장화, 홍련>,<4인용 식탁,><불신지옥>,<독> 같은 심리와 심령을 직조한 공포영화의 수작 계보를 잇기에 손색이 없다. 한국산 공포영화 자체가 사라진 지금, 상업영화 진영에서 <장산범>이 두각을 나타냈다면 독립영화 군에선 <사월의 끝>이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었다. <씨네21> 이용철 평론가는 <사월의 끝>을 "올해 한국 호러가 거둔 중요한 수확"이라 평가했다.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월의 끝>은 '한국 공포영화의 시작'이다.
2017.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