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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Sep 03. 2017

영화 리뷰 <패신저스>

공상과학으로 새롭게 쓴 <귀부인과 승무원>


승무원 258명과 승객 5000명이 탑승한 우주선 아발론 호는 개척 행성 '터전2'를 향해 120년의 여정에 나선다. 자동 주행 상태로 날아가던 아발론 호에 알 수 없는 결함이 발생하면서 엔지니어인 짐 프레스턴(크리스 프랫 분)은 90년이나 일찍 동면 상태에서 깨어난다. 동면에 들어가는 장비가 없다는 걸 깨달은 짐은 우주선에서 유일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안드로이드 바텐더 아더(마이클 쉰 분)를 벗으로 삼아 시간과 싸운다. 고독에 휩싸여 자포자기 상태로 지내던 짐은 동면 장치에 잠들어 있던 작가 오로라 레인(제니퍼 로렌스 분)을 보고 사랑에 빠진다. 우주선에 발생한 치명적인 결함은 시시각각 그들을 위협하기 시작한다.


<다크아워>,<프로메테우스>,<닥터 스트레인지>의 각본을 집필한 존 스파이츠의 손에서 태어난 <패신저스>는 2007년부터 할리우드에서 영화화 되지 않은 시나리오 중 가장 매력적인 작품으로 손꼽혔다. <패신저스>는 "만약 120년간의 동면 여행 중 90년이나 일찍 깨어나 버리면 어떻게 될까?"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시나리오의 상상력을 영화로 구현한 이는 <버디>,<헤드헌터>로 명성을 떨치고, <이미테이션 게임>으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최우수 작품상 후보에 오르는 성과를 거둔 모튼 틸덤 감독이다.



<패신저스>는 3개 부분으로 짜여있다. 짐이 우주선에서 홀로 지내는 초반은 마치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떠오르게 하는 공상과학의 색채로 가득하다(모튼 틸덤은 스탠리 큐브릭의 대표작인 <샤이닝>의 바(BAR) 장면을 가져다 아더의 설정에 넣어 존경을 바쳤다). 짐과 오로라가 함께 지내는 중반은 <블루 라군>,<파라다이스> 같은 외딴곳에 머문 연인의 사랑으로 가득하다. 우주선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후반은 <이벤트 호라이즌>,<선샤인>이 보여주었던 액션으로 충만하다.


'성경'에 나오는 에덴동산, 아담과 이브, 선악과, <프랑켄슈타인>에서 고독에 몸부림치는 괴물, <미녀와 야수>에 내재하던 스톡홀름 증후군(공포심으로 인해 극한 상황을 유발한 대상에서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는 현상) 등이 골고루 섞인 <패신저스>는 기실 1974년 영화 <귀부인과 승무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귀부인과 승무원>은 무인도에 갇힌 남자와 여자를 통해 당시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건드렸다. 반면에 <패신저스>는 윤리적인 문제를 만지작거린다.


<패신저스>는 최근 할리우드에선 내놓은, 우주에서의 고독과 생존을 다루었던 <그래비티>,<인터스텔라>,<마션>이 주목했던 '살아야 하는 이유'를 벗어나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를 묻는다. 외로움에 시달리던 짐의 행동에 무조건 돌을 던질 수 있을까? 당신이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우주복을 입고 우주를 바라보던 짐이 흘리는 눈물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짐의 선택은 영화를 본 사람들끼리 대화를 나누기에 충분한 소재다. 마지막 오로라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패신저스>의 결말은 <귀부인과 승무원>의 마지막을 뒤집어 놓았다. 모튼 틸덤 감독은 "충만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한 이야기다"라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패신저(passenger)는 단어 그대로 '승객'이란 의미 외에 극 중에서 운명에 이끌린다는 '수동'의 뜻을 지니고 있다. 체제에 순응하며 사랑을 포기하던 <귀부인과 승무원>의 남녀와 달리 운명의 흐름을 바꾼 엔지니어와 작가는 아더'왕'(바텐더의 이름이 아더인 사실을 기억하자)의 전설에 나오는 낙원 '아발론(우주선 이름이 아발론 호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으로 사람들을 인도한다. 그렇게 두 사람은 패신저(passenger)를 '능동'으로 바꾸었다. <패신저스>는 공상과학으로 새롭게 쓴 <귀부인과 승무원>이다.


2016.12.28

영화칼럼니스트 이학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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