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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Nov 04. 2017

집중 탐구 <토르: 라그나로크> (1)

코미디를 끼얹은 스페이스 오페라, 이런 '토르'는 없었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예고편은 어떤 마블시네마틱유니버스(마블 코믹스의 만화 작품에 기반을 두고, 마블 스튜디오가 제작하는 슈퍼히어로 세계관이자 미디어 프랜차이즈, 아래 MCU-기자 주)의 것보다 충격을 안겨주었다.


토르(크리스 헴스워스 분)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강력한 힘을 상징하는 해머 묠니르를 한 손으로 파괴한 헬라(케이트 블란쳇 분)의 정체는 무엇인가? 무기를 잃은 토르는 그녀에게 어떻게 맞설 것인가? 위기에 처한 토르 앞에 나타난 헐크가 갑자기 덤비는 난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할까? 예고편이 일으킨 파장은 엄청났다.


슈퍼히어로의 르네상스



지금 할리우드는 슈퍼히어로 장르의 르네상스 시대라 일컬어도 무리가 없다. 마블 스튜디오가 <아이언맨>을 시작으로 MCU를 구축한 이래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너도나도 슈퍼히어로 영화를 쏟아내며 '유니버스' 만들기에 앞장섰다. 세계관을 의미하는 '유니버스'는 슈퍼히어로 장르를 넘어 킹콩과 고질라가 만나는 '몬스터유니버스',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등이 등장하는 '다크유니버스'로 진화하기도 했다. 안정된 수익을 보장하는 프랜차이즈에 목말라하던 할리우드 스튜디오에 슈퍼히어로 장르와 유니버스는 단비와 다름없었다.


유니버스 안에서 한 편의 영화는 개별적이기보단 종속 개념에 가깝다. 기획과 제작을 맡은 스튜디오는 유니버스 전체의 '톤 앤드 매너'를 우선시한다. 스튜디오는 심한 변화를 주다가 수십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프랜차이즈가 망가지는 걸 절대로 원치 않는다. 그러나 지나친 반복은 관객의 피로감을 높일 수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를 제작하는 스튜디오는 익숙함과 새로움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셈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과거에 제작자의 입김이 세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벤져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을 연출한 조스 웨던은 여러 이유로 MCU에서 손을 뗀 상태이며 수년간 <앤트맨>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에드가 라이트는 창작에 대한 견해 차이를 이유로 들면서 떠났다. <토르: 다크 월드>의 연출을 맡았던 패티 젠킨스는 마블 스튜디오의 요구 조건이 까다로워 하차를 선언했다.


최근 마블 스튜디오는 감독의 개성을 살려주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추세다. 마블 스튜디오가 근래 내놓은 흥미진진한 작품은 모두 감독의 개성이 만든 결과물이다.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는 제임스 건의 B급 무비 감성으로 충만하며 <닥터 스트레인지>는 스콧 데릭슨의 시각적인 야심이 물결친다. <스파이더맨: 홈커밍>의 존 왓츠도 별난 감성을 영화에 넣었다. 분명히 MCU의 개별 영화에서 작가의 인장은 점차 뚜렷해지고 있다.


<토르: 라그나로크>의 메가폰은 뉴질랜드에서 온 타이카 와이티티에게 쥐어졌다. 그를 기용한 이유를 마블 스튜디오의 대표 케빈 파이기에게 들어보자.


"새로운 캐릭터들과 빌런, 장소를 이용해 전작과는 다른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 우리는 시리즈의 분위기에 변화를 주어 관객을 놀라게 하고 싶었다."


타이카 와이티티 감독은 연출을 수락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현실과는 다른 세계,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마블 제작진은 1,2편과는 다른 방식의 영화를 원했고, 그것이 내가 이 작품에 끌린 이유 중 하나다. 우주가 확장되듯이 MCU도 변화를 맞이하고, 나 자신도 창작자와 감독으로서의 경험과 스토리텔링을 더 넓힐 필요가 있었기에 이 작품을 선택했다."


'셰익스피어'와 <왕좌의 게임>을 벗어난 새로운 토르의 탄생



<토르>는 <아이언맨>, <인크레더블 헐크>, <퍼스트 어벤져>과 함께 페이즈1(어벤져스)에 속하는 슈퍼히어로다. 그러나 토르는 아이언맨, 헐크, 캡틴 아메리카와 차이가 제법 크다. 아이언맨은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여 슈트를 만들었고 헐크는 과학을 연구하다 방사선에 노출되었으며 캡틴 아메리카는 미국 정부의 '슈퍼 솔져' 프로젝트로 만들어진 인간병기다. 이들은 현실에 발을 딛는다. 


반면에 토르는 우주(다른 세계)에서 온 외계인(신)이다. 태생부터 이질적인 토르는 가공할 힘과 터무니없는 무기를 사용하는 특별한 존재다. 마블 스튜디오는 자본과 과학(아이언맨), 영웅과 괴물(헐크), 도덕성과 신념(캡틴 아메리카)에 '토르'라는 신화를 입혀주면서 페이즈1의 <어벤져스>를 완성한 것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판타지에 가까운 <토르>를 우스꽝스럽지 않게 보여주기 위해서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인용했다. <헛소동>, <햄릿>, <오델로> 등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다수 영화로 옮긴 바 있는 케네스 브래너에게 연출을 맡긴 건 우연이 아니다. 그의 조율로 태어난 <토르>는 대부분은 무겁게 진행하다가 가벼운 유머를 약간 친 정도였다. 이런 흐름은 <왕좌의 게임>을 만든 바 있는 앨런 테일러가 참여한 <토르: 다크 월드>까지 이어졌다.



토르는 페이즈1에 가까스로 안착했지만, 입지는 애매했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확고부동한 리더로 자리를 잡았으나(헐크의 경우는 판권 문제로 솔로 무비를 만들기 어렵다) 토르는 망치를 휘두르는 근육맨의 이미지만 남았다. 토르의 매력은 무엇일까? 그는 어떤 모험을 해야 하나? 앞날은 캄캄했다.


<토르>의 진정한 재미를 찾고자 의기투합한 케빈 파이기와 타이카 와이티티는 과감한 방향 전환을 결정한다. 그들은 크리스 헴스워스라는 배우의 재능을 살리고 토르가 활력을 얻을 최선책을 찾아냈다. 바로 스페이스 오페라에 코미디를 결합하는 시도를 한다.


셰익스피어적 가족극인 <토르>와 <왕좌의 게임>스러운 판타지 분위기로 가득한 <토르: 다크 월드>는 '타이카 와이티티'란 유머 필터를 통과하며 웃음이 넘치는 <토르: 라그나로크>로 새로이 태어났다. 이런 변화에 대해 타이키 와이티티 감독은 "북유럽 신화에서 '라그나로크'란 말은 세상의 종말을 뜻한다"며 "나는 기존 것이 파괴되고 새로운 것이 탄생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한다. 그의 말처럼 <토르: 라그나로크>는 '셰익스피어'와 '왕좌의 게임'을 벗어난 새로운 토르의 탄생이다.


2017.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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