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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후 Apr 05. 2016

영화 리뷰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

감정을 말이 아닌 노래로 표현할 수만 있다면?


재패니메이션(재팬과 애니메이션의 합성어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지칭)이란 애칭으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강국 일본에서, 원작과 원안이 없는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사라지는 추세다. 많은 제작비가 드는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제작사들은 관객층이 불투명한 오리지널 작품보다 수요층이 검증된 만화책, TV 애니메이션, 소설 등을 원작으로 삼길 선호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명가인 스튜디오 지브리가 더는 극장판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한 현재, <늑대아이>의 호소다 마모루와 <별의 목소리>의 신카이 마코토 정도가 관객의 사랑을 받으며 명맥을 잇고 있다.


TV 시리즈로 방영하여 큰 화제를 모으고, 극장판 애니메이션으로 상영되어 10억 엔이 넘는 흥행 성적을 거두었던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는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다.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산파였던 감독 나가이 타츠유키, 각본가 오카다 마리, 작화를 맡았던 다나카 마사요시가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로 다시 뭉쳤다. 전작이 오카다 마리의 기획으로 이루어졌던 작품이라면,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세 사람이 함께 고민하면서 아이디어를 모은 결과물이다.



"어떤 작품을 만들까?"라는 고민부터 함께 시작한 셋은 '관계'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고 노래로 표현하는 아이가 있다면?"이란 생각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왜 감정을 노래로밖에 드러내지 못할까?", "오히려 말을 봉인 당한다는 설정은 어떨까"로 나아가며 나루세 준이란 인물을 만들었다. 어릴 적에 겪은 가족의 불행이 자신의 말 때문이라고 여기는 나루세 준(미나세 이오리)이 달걀 요정에게 말을 봉인 당한 후, 껍질 안에 숨어 지내다가 자길 받아들여 주는 친구들을 만나며 가슴 속에 가둬두었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에서 음악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영화는 준이 학교에서 진행하는 지역 교류회의 준비위원으로 임명되면서 사카가미 다쿠미(우치야마 코우키), 니토 나쓰키(아마미야 소라), 다사키 다이키(호소야 요시마사)와 힘을 합쳐 뮤지컬 '성의 무도회'를 준비하는 과정을 담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뮤지컬의 대본으로 쓴 나루세 준은 처음에는 베토벤의 '비창'을 엔딩으로 삼았다. 곡에 담긴 비극적인 힘과 나루세 준의 심리는 '비창'으로 만난다.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는 준은 친구들과 공연을 준비하며 뮤지컬 엔딩을 영화 <오즈의 마법사>의 주제곡인 '오버 더 레인보우'로 바꾸려 한다. 저너머의 희망을 말하는 '오버 더 레인보우'는 준이 마음을 열어가고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 두뇌가 없는 허수아비, 심장이 없는 양철 나무꾼, 겁쟁이 사자라는 인물 구도는 각자 마음의 상처가 있는 준, 다쿠미, 나쓰키, 다이키이기도 하다. <오즈의 마법사>의 여정처럼 그들은 점차 마음을 열어가며 상처를 극복한다.



'비창'과 '오버 더 레인보우'를 합창으로 엮어 준의 소리를 모두 담고자 했던 다쿠미의 바람은 극 중 대사인 "뮤지컬은 기적이 함께 하니까"란 대사에 어울리는 마법 같은 순간을 빚는다. 두 사람이 노래하는 두 곡의 노래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마주하게 한다. 준에게 있어서 상처의 상징이었던 달걀은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깨지기 십상이었던 껍데기로 존재하다가 성장을 위해 깨어야만 하는 껍데기로 그 의미가 변한다. 말의 무서움,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의 어려움, 스스로 만들어낸 굳건한 생각 등이 어떤 마법의 순간을 통해 변화한다.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생채기가 난 마음을 '혼자'가 아닌 '모두'가 함께 이겨내는 <그날 본 꽃의 이름을 우리는 아직 모른다>의 정서를 다시금 재현한다. 영화의 감동은 스튜디오 지브리와 호소다 마모루 감독의 작품에 이어 원작과 원안이 없는 작품으로는 역대 4번째로 일본 흥행 수입 10억 엔을 돌파하는 성적과 2016년 일본 아카데미 우수 애니메이션 작품상 수상으로 이어졌다. 섬세한 심리 묘사와 세심한 관찰력이 만든 치유의 목소리를 담은 <마음이 외치고 싶어해>는 오리지널 극장판 애니메이션이 사라지는 시대에 날아온 보석 같은 영화다.


2016.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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