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엔 마라도나의 나라로, 요즘은 메시의 나라로 유명한 축구 강국 아르헨티나. 브라질, 멕시코와 함께 중남미 지역 경제의 중심기둥인 아르헨티나는 할리우드의 영향력에 시장을 잠식당한 상황에서도 연간 20여 편이 넘는 영화를 제작하는 주요 영화 산업국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가까운 기간 내에 한국에 수입된 아르헨티나 영화를 살펴보면 201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 2014년 <죽음의 천사> <세븐 플로어>, 2015년 <와일드 테일즈 : 참을 수 없는 순간> 등이 극장 또는 부가 판권 시장으로 선보인 바 있다.
근래 소개된 아르헨티나 영화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2010년 제8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받은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일 것이다. 할리우드에서 니콜 키드먼과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을 맡은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한국에서 오는 28일 개봉 예정)로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상업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은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의 일등 공신은 주인공으로 분한 리카도 다린이다.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은 아르헨티나에서 국민 배우로 불리는 리카도 다린이 주연을 맡은 또 한 편의 아르헨티나산 영화다.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사는 철물점 주인 로베르토(리카도 다린 분)와 갑자기 그의 앞에 나타난 중국인 준(이그나시오 황 분)의 일주일 동안 사연을 다룬다. 영화는 "이 영화는 실화에 근거한다"(실화의 비밀은 영화가 끝난 후에 엔딩 크레디트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자막으로 시작한다.
까칠하기 짝이 없는 로베르토와 지구 반대편에 와서 국제 미아가 된 준을 보여주며 영화는 두 가지 의문을 갖게 한다. 홀로 사는 로베르트에겐 가족은 왜 없는 것이고, 사랑하는 사이였던 걸로 짐작되는 마리(뮤리엘 산타 안나 분)를 저버리게 된 사연에 호기심을 갖도록 만든다. 큰아버지를 찾는 준의 모습에선 그에게 어떤 일이 생겼던 것인지를 궁금하게끔 한다. 영화가 찍은 두 개의 물음표는 둘이 함께하는 시간을 통과하며 한 개의 열쇠로 풀 수 있는 질문으로 바뀌어 간다.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은 국적, 나이, 외모, 성격 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다른 두 사람의 특별한 만남과 헤어짐의 이야기로 타인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묻는다. 영화에서 타인과의 소통의 어려움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는 '언어'다. 영화 속에서 준이 말하는 중국어는 번역하지 않는 방법으로 연출되어 있다. 관객에게 번역된 자막을 주지 않는 연출 기법은 뤽 베송 감독이 <루시>에서 루시(스칼렛 요한슨 분)가 미스터 장(최민식 분)의 조직에 납치되었을 때에 한국어를 자막 없이 처리하면서 보여주었던 바 있다. 로베르토가 준의 말을 전혀 못 알아듣는 불통 상황을 관객 역시 똑같이 체험하는 셈이다.
로베르토의 집에서 준이 머물던 방과 벽을 칠하면서 일하던 곳은 로베르토의 심리를 표현하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준에 의해서 방의 물건은 정리되고, 벽은 새로이 칠해진다. 마찬가지로 로베르토가 소중히 다루던 어머니의 사진과 물건이 담겼던 벽장은 그가 지녔던 죄책감을 나타낸다. 영화에서 준이 실수로 벽장을 넘어뜨리는 실수를 범하는 데, 이것은 서사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작동한다.
실화로 표현되는 기묘한 사건으로 출발해서 두 사람의 만남을 거치면서 영화는 "인생은 불합리한 일들로 가득 찬 모순덩어리다"라고 생각하는 로베르토와 "모든 일에는 뜻이 있다"고 말하는 마리 사이의 간격을 차츰 좁혀간다. 준은 실로 운이 좋았던 사람이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밀던 로베르토가 그의 옆에 있었다. 행운은 로베르토에게도 해당한다. 신문에 난 기이한 사건을 스크랩하며 마음을 닫고 지냈던 그에게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온 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을 통해 '자아'를 돌아보는 여정을 담은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은 소통 부재에 시달리는 한국 사회에 명징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로베르토' 또는 '준'이 될 수 있을까? 영화는 먼저 다가가서 손을 건네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철물점의 창살을 벗어나 탁 트인 들판으로 나가는 로베르토처럼 타인에게 힘차게 달려가라고 영화는 외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