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영화 리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후 Apr 10. 2016

영화 리뷰 <무서운 집>

21세기 한국에 느닷없이 도착한 컬트 영화


<암살>,<베테랑>,<미션 임파서블: 로그네이션>,<미니언즈> 등 굵직한 여름 대작들이 극장가를 장악한 요즘,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무서운 집>이란 영화 예고편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싸구려 에로 영화를 연상케 하는 조악한 영상, 발연기로 일관하는 여배우의 황당한 연기, 영상 제작 프로그램을 처음 접한 초보 수준의 저품질의 예고편. <무서운 집>의 예고편은 여러모로 보는 이를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도록 만들었다.


온라인의 비상한 관심은 오프라인으로 이어져 지난 7월 30일 서울에 있는 조이앤시네마 극장에서 열린 단 한 차례 극장 상영에 전국의 팬이 몰려 성황을 이루었다고 한다. 뜨거운 열기에 힘을 얻었던 탓인지 연출을 맡은 양병간 감독은 예정에 없던 관객과의 대화에 참여하여 성원에 화답했다.


극장에서 놓친 이들을 위하여 배급사는 8월 8일에 한 번 더 상영을 준비하고 있다. 일정한 인원 이상이 모이면 상영회 등에서 볼 기회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한다. <무서운 집>은 서구에서 소수의 숭배자를 잉태했던 <록키 호러 픽쳐쇼>와 <외계로부터의 9호 계획> 등과 같은 열기를 떠올리게 한다. <무서운 집>은 21세기 한국에 느닷없이 도착한 컬트 영화다.



움직이는 마네킹보다 더 무서운 기괴한 영화


<무서운 집>의 촬영, 조명, 편집, 녹음 등 기술적인 면들은 배급사를 통해 극장과 다운로드 시장에 유통되는 영화가 맞나 의심이 들 정도로 완성도가 처참하다. 극악의 품질을 자랑하는 것은 단연 각본과 연기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영화는 사진작가 부부가 새로 장만한 4층 집에 스튜디오를 꾸미고 사용하는 마네킹을 조립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중에 남편이 출장을 가게 되면서 큰 집에 홀로 남은 아내가 겪는 해프닝을 다룬다.


<무서운 집>은 갑자기 움직이는 마네킹과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이는 과정을 오로지 집 안에서, 1인극으로 담았다. 마네킹만큼 무시무시한 공포를 주는 이는 주연을 맡은 배우 구윤희다. 영화는 국어책을 읽는 듯한 연기와 어색한 몸짓으로 마네킹과 그다지 차이가 없는 연기를 보여주는 구윤희를 빌려 <싸이코>,<샤이닝>,<이블데드>의 명장면을 황당하게 재현한다.


<무서운 집>의 빈번히 사용되는 롱테이크(오래 찍기)는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4층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을 전부 보여주는 정도는 애교에 가깝다. 3분여에 걸쳐 길게 찍은 샌드위치 먹는 장면은 이것이 영화인가, 인터넷 먹방인가 의심을 하게 한다. 영화는 한술 더 떠서 잠을 청하는 장면을 2분에 가깝게 잡는 식으로 관객을 실제 체험으로 몰아넣는다. 마네킹을 보고 놀라 기절한 장면을 1분 동안 보여주는 장면에 이르면 이것이 영화인가, 현실인가 착각이 들 지경이다.


<무서운 집>의 초현실적인 접근법은 실로 낯설다. 도망치던 여자가 제자리걸음을 하는 장면은 어떤 영화에서도 만날 수 없었던 기괴한 장면이다. 잠을 청하던 여인이 느닷없이 일어나 국어책을 읽는 대목이나 '베사메 무초'를 부르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가장 초현실적인 화법은 영화가 앞부분을 몽땅 할애하며 상세히 묘사한 일상이다. 98분의 러닝타임인 <무서운 집>은 시작하고 30분 정도 동안 별다른 사건 없이 밥 먹기, 양치질하기, 집 청소 하기, 화장실에서 생리 현상을 해결하기, 전화로 수다 떨기, 심지어 김장 하는 모습까지 차분히 비춰준다.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을 꾹 참고 지켜보는 초현실적인 체험이야말로 <무서운 집>의 진짜 '무서운' 면이다.



<무서운 집>은 거의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기에, 달리 말하면 너무 못만들어서 재미있는 영화다. 이것은 마치 불량식품을 먹으면서 느끼는 일탈의 흥분과 유사하다. 그런데 <무서운 집>은 만듦새와 상관없이 메시지에서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영화에서 여자는 마네킹을 향해 "내가 이 집을 어떻게 장만했는데 네깟 것이 나를 희롱해!"라고 호통친다. 앞서 나왔던 국어책을 읽는 대목에서 강조된 지구(땅)과 연결되며 <무서운 집>은 '집'이란 개념에 유의미한 해석을 부여한다. 서구의 '하우스 호러' 장르가 초현실적인 현상에만 집중했다면, <무서운 집>은 부동산에 집착하는 한국 현실을 넣어 '부동산 호러'라는 형태로 의미를 탈바꿈한다.


우리에게 부동산은 돈벼락의 꿈을 이뤄주는 매개체와 다름없다. 부동산에 집착하는 우리네 현주소는 <강남 1970>,<숨바꼭질>,<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영화에 깊이 투영되어 있다. 1990년대 에로 영화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에서 나무봉에 대고 주문을 외우면 남자로 변한다는 황당한 설정으로 성적 판타지를 은유했던 양병간 감독은 <무서운 집>에서 목숨을 걸고 집을 지키기 위하여 파 썰던 부엌칼을 들고 마네킹과 대결하는 여인을 보여주며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에게 부동산이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2015.8.6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리뷰 <로베르토의 특별한 일주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