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

믿는대로 될지어다.

by 분홍공기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소리들에 귀 기울여본 적 있는가?


운전을 시작하면서 나의 첫 차는 경차였다.

경차를 선택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겠지만 초보이자, 유지비, 시내 운전에 최적화된 조건으로 보면

최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운전을 함에 있어서 생각하지 못한 일들과 상황은 계속해서 생겼고 이 경험들은 서서히 내 안에서 굳은 생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사람들은 경차를 몰고 다니는 여자 운전자는 무시해."


이 생각이 나의 신념이 되어버렸다. 당연한 생각에 감정들을 외부의 정보를 더 해 사실인 것처럼 떠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께서 나에게 한 질문은 나의 관점을 완전히 뒤집게 만들어주었다.


"그 생각이 정말 사실이야? 나는 무시당하는 경험을 한 적이 없는데?"


라는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이 굳은 신념에 조금씩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생각해 보니 사실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틈이 생겼다. 그리고 운전을 하면서 무시당한다는 신념은 불쾌하고 짜증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도대체 이 생각은 어디서 어떻게 온 것일까?

조금씩 나의 생각에 질문을 던지면서 알아차리기 연습을 하게 되었던 것 같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이 무엇을 믿고 있는지조차 모른 채 살아간다. 생각은 끊임없이 떠오르고, 감정은 흐르듯 지나가지만, 그 모든 것의 바탕에 자리한 ‘신념’ 즉 굳은 생각은 좀처럼 의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삶의 방향은 늘 그 보이지 않는 신념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내 안에 “나는 부족하다.”라는 신념이 있다고 해보자.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것을 부정하거나, 혹은 반대로 그것에 깊이 빠져든다.

부족한 나는 부족한 나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든 행동과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완전 또는 완벽을 위해 에너지를 쓸 것이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나의 생각의 패턴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삶은 신념의 쳇바퀴 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것은 나의 정체성이 되어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로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더 나아가면 정신병리학적인 진단을 받아 병으로 이어지는 현상은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일이다.



문제로 만들어버리는 병리학적 증상은 외부에서 나에게 준 것이 아닌 내가 만든 것이다.

'나'라고 정의 내린 수많은 단어와 문장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내가 일으킨 작은 생각의 씨앗들이 커져

무럭무럭 자라난 신념의 나무가 되어 있는 것이다.

생각은 계속 일어나고 막을 수 없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일어나는 신념을 잘 이해하고 삶에 적용시키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념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까?

여기서 하나의 질문을 던져보자.


"부족과 완벽한 게 뭐지?"

명확하게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우리 안에 이 굳은 신념을 어떻게 만나주면 좋을까?



1. 신념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부터 거두어보자.


신념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것을 문제로 바라보고 사용하는 의식이 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구조를 만든다. 즉, 신념을 인식하는 나의 생각의 구조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

좋고, 나쁘고, 옳고, 그르고 이런 이원론적인 생각은 유연한 사고로 나아가지 못하고 틀과 감옥에 가두어 버리는 삶을 만들어버린다. 비슷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은 서로를 적대시하며 상대의 신념은 잘못되고 나쁜 것이라고 정의 내리며 갈등의 구조를 만든다. 예를 들면 규율, 예절, 종교 더 나아가 사상 안에서 만들어진 신념은 옮고 그름 그리고 좋고 나쁨의 분별을 내어 균열을 만들어내는 것이 사회 안에서 볼 수 있는 흔한 갈등의 모습이기도 하다.



2. 신념을 알아차려보자.


내 안의 신념을 그냥 사실 그대로 해석해 보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그 신념을 고치려 들기보다, 그저 “아, 이런 믿음이 내 안에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알아차림은 매우 단순해 보이지만, 실은 깊은 의식의 전환이다. 왜냐하면 그 순간, 우리는 신념과 동일시되는 상태에서 한 걸음 물러나기 때문이다.

알아차린 신념들에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정말 그런가?"

"이건 사실일까?"

"나는 왜 화가 날까?"


이러한 질문들은 신념 안에 갇힌 삶이 아닌 신념을 사용할 수 있는 삶으로 흐를 수 있게 만들어준다.

이 상태에 가까워질수록 우리는 점점 더 자유로워진다. 어떤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에서도 벗어나고, 기존의 믿음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에서도 벗어난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는 것은, 고요한 상태이다.

그 고요함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존재 그 자체’로 머물게 된다.


3. 자유의지를 사용하자.


신념은 고정된 진리가 아니라, 의식이 만들어낸 하나의 형태다. 그리고 그 형태는 언제든지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형태가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의식의 상태인 것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질문을 던진 자리에는 신념이라는 생각을 잘 쓰고 싶은 나의 의지가 담겨 있다.

'나에게 이런 생각들이 있고 신념들이 있네? 다르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어떻게 잘 쓸 수 있을까?'

당장 명확한 정답을 찾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내 안에 이 상황을 조금은 더 괜찮은 방향으로

이끌고 싶은 본능은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자유의지라고 했다.

따라서 이 의지를 우리는 신념이라는 단어를 통해서 긍정적이고 합리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신념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만, 동시에 신념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마주할 수 있다. 그 사이의 긴장과 균형 속에서, 배움은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된다.

어쩌면 깨달음이란 특별한 무엇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알아차림이 깊어질수록 신념은 더 이상 나를 가두어 두는 틀이 아니라, 나를 세상에 비추는 투명한 필터가 될 수 있다. 그 필터를 통해 바라본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즉, 나의 자유의지로 새로운 세상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


나를 가두고 믿고 있는 자유의지를 오늘 진실하게 마주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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