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은 지금뿐이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았다.
흔히 우산을 쓰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이유가 아니었다.
예고 없이 내리는 비가 나에겐 가혹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 학교에 우산을 챙겨가지 못한 날 비가 오면 엄마들이 데리러 오곤 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에 맞춰 우산을 가져가면 문제가 없지만 예보가 없거나, 우산을 챙겨가지 못하면 그냥 비를 맞고 와야 했다. 엄마가 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올 수 있었음에도 오지 못했다. 이유는 우산을 가져다주면 아이의 버릇이 나빠진다는 아빠의 가정교육 철학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비를 맞고 오거나 비가 그치기를 하염없이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아마도 살면서 가장 슬프고 아픈 장면들로 떠오를 때면 소리 없이 울곤 한다. 10살이 되지 않던 그때의 나는 세상에 울타리가 없다고 믿게 되었고, 내 옆에 누군가가 나를 위해 만들어내는 울타리도 안전하다고 생각하기보다 불편하다 느끼면서 살아왔다.
30대 후반이 되어서도 내 인생에는 결혼이 없다고 믿었다.
흘러온 시간에 대한 회의감도 있었고, 결혼으로 반짝일 것 같은 내일의 행복을 꿈꾸고 싶지 않았다.
결혼으로 안정된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관념에도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허용되지 않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온전한 나의 시간에 집중할 수 없었던 삶의 방향을 멈추고 싶었고 나를 위한 새로운 길을 향해 걷고 있었다. 짝꿍 역시 마찬가지였고 우리는 각자의 길을 따라 걸어가는 여정에서 함께 만나 새로운 길로 함께 걸어가자 다짐했다. 사회적 위치나 재산을 기준으로 서로를 평가하지 않았고, 존재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시간을 채워가면서 서로에게 둘 도 없는 사람으로 자리 잡아가던 시간 안에서 행복했다.
준비 없이 만난 빗 속에서 서로에게 우산이 되어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완전함과 안전함에 대한 경계를 허물며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흔들려도 괜찮은 시간 안에서 내일의 행복을
다짐해도 괜찮겠다는 믿음이 생겨날 즈음이었다.
달리기를 하려고 출발 지점에 섰다.
목표를 향해 달리려고 굳게 마음을 먹고 의지를 내며 온몸과 마음을 준비 태세로 바꾼다.
그렇게 출발지점에서 순조로운 출발을 외치고 속도를 내자마자 누군가가 내 발을 걸었다.
방어를 할 틈도, 저항을 할 여지도 없이 그냥 걸려 넘어졌다.
넘어지는 순간에는 너무 아픈데 쪽팔려서 울 수도 없다. 괜찮은 척 털고 일어나려고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보다 너무 심하게 다쳤던 것이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데 누군가의 손을 잡지도 못한다.
잡아본 적도 없고 잡기에도 두렵다.
사고 후 3년이라는 시간 안에서 나의 모습이다.
하지만 주저앉아 울기만 하기에는 목표 지점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다.
함께 넘어진 짝꿍도 보인다.
경기가 끝난지도 모르겠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고 내 마음이 자꾸 말한다.
옆에 있는 짝꿍이 더 많이 다쳐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몸을 움직일 수 있지만 짝꿍은 그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일어나서 짝꿍이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
지금의 마음은 그렇다.
나의 울타리가 되어 주었던 그 사람에게 지금은 내가 울타리가 되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마음뿐이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억지로 해야 하는 상황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내 옆에 울타리가 무너졌으니 이제는 내가 그 역할을 하고 싶었다.
대단한 방법 같은 건 모르겠다. 그냥 해 본다.
사실 언제까지 어떠한 방법으로 지속할지는 모르겠다.
준비 없이 내린 비를 내가 그치게 하고 싶다고 그쳐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살려야겠다고 일으켜야겠다고 인사를 하고 싶다는 그 마음뿐이다.
오늘 해야 할 일들을 하고 오늘 필요한 마음을 쓰고
오늘의 슬픔과 오늘의 평온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하루를 보낸다.
어떤 날은 마음이 요동치고 또 다른 날은 기쁨과 감사로 넘쳐난다.
왜 우리의 삶이 이렇게 되었는지 문득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기도 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날도 있다.
그럴 때면 나는 다시 오늘로 돌아온다.
지금 이 시간.
지금 이 하루.
우리가 아직 여기에 함께 있다는 사실.
생각해 보면 삶이라는 것도 결국 ‘오늘’들의 모음이다.
우리의 삶의 포인트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여기이다.
실제로 살아내는 것은 언제나 오늘뿐이다.
그래서 나는 거창한 다짐 대신 작은 문장을 마음속에 남긴다.
대단한 하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우리는 오늘을 잘,
살아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