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아있음이 완벽이다.
결혼 전 나의 삶은 원하는 바를 이루고자 계획적이고 나름 정해져 있으며 루틴대로 생활하는
완벽함을 꿈꿨다. 무엇이 완벽인지 모른 채 앞만 보고 달려오던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완벽이란 무엇이었을까?
완벽하다는 말은 겉으로는 아주 쉽게 해석할 수 있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상태. 흠이 없고, 부족함이 없는 상태.
우리는 흔히 완벽을 “가장 좋은 상태”라고 인식하고 있다.
어떠한 현상과 사람을 평가하는 지표 같은 것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런 삶의 모습에서 나는 짝꿍을 돌보면서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무의식적으로 완벽하게 해내리라
마음먹었고 행동했으며 지속했다.
부족함 없이 무조건적으로 환자를 위한 모든 준비 태세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의학적인 근거로 짝꿍은 생명은 있지만 회복 불가능의 상태라고 했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틈도 없이 24시간 환자를 돌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3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곧 긴장과 애씀의 상태에서 이완도 여유는 찾을 수 없는 상태였다는 것이다.
완벽과 만족을 향한 패턴이 너무 익숙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만족은 없었고, 짝꿍은 내 마음의 속도와 다르게 뒤돌아보면 후회와 슬픔의 반복만이 있었다.
'대체 좋아지긴 하는 걸까?' 혼잣말을 어디에도 뱉을 수 없는 슬픔마저도 내 몫이었다.
보이지 않는 터널을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어디서부터 출발한 건지, 어디로 갈 것인지에 대한 정보와 지금 머무르고 있는 상태조차 잃어버리게 되었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과 마음으로 인지했다. 그것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마음은 글로 표현하게 되었고 이것은 곧 나의 마음 안에서 엉켜버린 삶의 패턴이 무너졌음을 보여주었다.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자주 아무렇지 않게 묻는다.
"남편 좀 좋아졌어?"
이 말을 듣는 순간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버리는 불꽃같은 감정들이 내 마음에 튀기 시작한다.
완벽한 보호자이고 싶은 나는 그 대답에 남편이 이만큼 좋아져서 앉고, 서고, 말한다는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될 때면 죄인이 되어 무력감을 느낀다. 물은 사람의 의도는 아무도 알 수가 없는데 "완벽해야 해"라는
말로 나를 묶어둔 생각이 스스로를 괴롭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완벽이라는 단어를 놓으면 나와 짝꿍은 한 없이 완벽하다.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말을 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죽음의 문턱에서 한 걸음씩 느리게 멈추지 않는 자신만의 속도와 리듬으로 우리를 향해 오고 있음을 안다. 짝꿍의 모습을 그 어떤 누구도 평가하며 표현할 수 없다.
의사도 이 정도의 호전상태를 보이기란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무엇이 짝꿍을 일으키고 있는지 우리는 단정 지을 수도 단언할 수도 없다.
그 안에서 나는 그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 애썼던 모든 것들만이 사실이다.
나는 그를 지켜주고 싶었다. 상처받지 않게, 생의 의지를 놓지 않게, 가능한 한 덜 아팠으면 하는 바람 말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건 결국 상처받고, 흔들리고, 때로는 무너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곁에 누군가가 있어 준다는 것이 완벽이고 사랑인 것 같다.
완벽함에 덧붙여 완벽한 보호자라는 말은 이제 다른 의미가 되었다.
무엇이든 빈틈없이 해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과 환경에서도 그냥 하는 사람.
결과에 집착하거나 누군가의 말에 내 중심을 잃어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
이 모든 것들은 짝꿍을 지켜내는 일이 되기도 하고, 부재인 그의 자리 안에서 나를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일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이 완벽한 자리에서, 가장 불완전한 마음으로 짝꿍을 마주한다.
내가 원하는 것들에 대한 대답이 돌아오지 않은 것을 너무나 잘 알면서도 말이다.
그래서 어쩌면 완벽이라는 건, 우리가 최상의 경지까지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막상 도착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자리인지도 모른다.
짝꿍의 시간은 멈춘 것처럼 고요하고, 나의 시간은 그 주변을 서성이며 계속 흘러간다.
네 번의 계절을 지나고 서로가 함께 한 시간에 스며든 인생을 만들어갈 것이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되겠지?
우리가 정말 원했던 것은 완벽이 아니라, 부족하고 불안전한 모든 상태를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
그러므로 서로를 통해 존재할 수 있는 그런 상태가 아닐까.
우리가 살아있으니 그거면 충분하다.
나는 오늘 마음으로 기도한다.
완벽이라는 기준을 내려놓고 내 앞에 있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