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I Am Here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SICA Apr 26. 2021

내가 있는 곳이 집이다

영화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

어렸을 때부터 서울 중심 동네에서만 거주해온 난 완벽하게 도시인이다.

아침 출근길엔 한강과 남산타워를, 해 질 녘엔 여의도 쪽 석양을 즐기는 것이 일상이고, 건강을 살필 땐 대학 종합 병원에, 공항에 갈 땐 공항리무진 버스를 타고, 서울 곳곳 공연장을 다니며 문화를 즐기고, 한강둔치에는 언제든지 드나들었으며, 배달어플과 택배서비스도 아무런 제제 없이 당연하게 이용하고 있다.


뻔질나게 다닌 해외여행도 대부분 도시 여행이었다. 십여 일 중 하루 이틀 정도 인근 자연을 즐기는 일정이 종종 섞이기도 했지만, 도시 중심지역을 벗어난 곳에서 숙박을 한 경우는 없었다. 대부분 서울과 마찬가지로 중앙역 부근은 혼잡하고 지저분한 경우가 많아서 중앙역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곳을 택하면 늘 만족스러웠기에 숙소를 고르는 요령마저 터득한 지 오래다. 편의시설이 없는 곳으로 향하는 여행은 거의 선택하지 않았으며, 어쩔 수 없이 향하게 된 경우엔 과하게 예민해졌고 결국 진통제를 먹곤 했다. 도시에서 누릴 수 있는 편의가 없는 지역은 나에겐 그야말로 '불안과 공포'의 대상이었고, 도시를 벗어난 곳에서 거주를 할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몇 년 전부터 급격하게 늘어난 캠핑족과 노마드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접했지만, 그저 남의 이야기로만 넘겨왔다. 한쪽에선 노마드가 되기 위한 '짐 덜어내기'와 '옮겨 다닐 장비 준비'에 도입하고, 다른 쪽에선 부동산에 열을 올리곤 했지만, 그 중간 어느 즈음에 머물러있는 나는 그저 그야말로 방관자였다.


작년 하반기 난생처음 재택근무를 해보면서, 예전 오프라인 시대에서 온라인 시대로 넘어올 때와 비슷한 혼선을 겪었다. 내 개인적인 효율성으로는 편하기도 협업해야 하는 과정에선 불편하기도 한 상황으로, 과도기에 겪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었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편함과 불편함 모두 익숙해진다'는걸 아는 나이가 되어서인지, 큰 동요 없이 잔잔하게 시간은 흘러갔다.


기업들이 소리 소문 없이 혹은 시끌벅적하게 사라져 가고 있고, 현장업무가 동반되어야 하는 분야를 제외하고는 노트북과 인터넷만 있다면 다양한 형태로 업무가 가능하므로 공식적인 사무공간이  이상 의미가 없어진 것은 자명한 일이다. 사람들끼리 복작복작 자신을 어느 정도 드러내고 상대에 대한 세심한 이해를 동반해야 하는 시절도 물기 시작했. 그저 업무로 만나는 사이, 업무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아는 정보 외엔 특별히 공유해야 하는 것이 없는 것이 디폴트화 되어 가고 있다.  경계가 아직 중구난방이지만, 점차 선명해지겠지.




이런 변화 중에서 만난 영화 노매드랜드. 인공 빛을 절제하고 빛이 들어갔어야 할 자리를 다른 요소로 촘촘히 채운 영화였다. 나름 괜찮은 캠핑카에서 1박을 해본 적이 있었는데 어찌나 불편했던지 다음날 호텔에서 10시간 동안 잠을 잤던 경험이 있던 터라 영화 초반 장면에서 불편함에 숨이 턱 막히기도 했다.


영화는 화장을 모두 지우고 가장 피곤한 순간의 민낯 같은 Vandwelling 모습을 시작으로, 우리의 주인공 '펀'이 느끼는 외로움의 끄트머리까지 담담하게 펼쳐내어 보여준다. 그녀의 외로움은 비단 Vandwelling을 택해서 느끼는 별난 감정이라기보단, 누구에게나 충분히 벌 어질 수 있을 막막한 동시에 평범한 사건들로 인한 보편적 감정으로 와 닿았다. 그래서였을까. 어느 순간 노마드에 대한 내 경계가 스리슬쩍 무너져가기 시작했다.


알고 보면 누구 하나 기막힌 사연 없는 사람 없다는 진리를 알게 된 건 이미 오래다. 각자 겪은 풍파를 어떻게 보냈는가 혹은 겪고 있는가는 그 당사자 수만큼의 갈래로 나뉘지만, 현재를 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을 듣기란 쉽지 않다. 영화를 통해서나마 듣게 된 노마드 삶을 택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이들에게 차는 곧 집이다. 주차한 공간은 마당. 주차 공간에서 당근마켓없이 무료 나눔을 주고받는 모두가 이웃이며, 처음 만났지만 담배 한 개비 정도 기꺼이 나누고 이름을 알게 된 사람이 친구이다. 친구가 되면 음식을 함께 먹으며 도움을 주고받고, 한발 더 나아가 삶의 상처를 공유하며 서로를 치유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혼자인 우리들. '가정'을 이루고 '집'에서 산다고 한들, 혼자 앓아야 하는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팔 벌려 환영해주는 '탄'의 가족이나 언니의 집에선 더 이상 삶의 의미를 찾기 힘들어진, 펀. 남들이 보기엔 볼품없고 낡아빠진 벤 ‘vanguard’에 올라 어디론가 전진하며 만나는 자연과 사람들을 통한 여정만이 그녀의 인생에 안정감을 충전해줄 수 있었다.




아무도 없는 비바람이 거센 바다. 아직 경험해본 적 없는 이 경험을 맛보며 행복의 맛을 보는 펀. 펀 역을 맡은 배우(프란시스 맥도먼드)에게도 실제로 그 자유의 맛이 느껴졌을 거라 짐작해본다.


자유의 맛을 느끼는 펀의 표정에서 루카 구아다니오 감독의 ‘I Am Love’의 엠마(틸다 스윈튼)가 떠올랐다. 경제적 상황이나 가족관계, 생활환경이 상이함에도 불구하고, 제자리에 멈춰있는 삶에서 해방되어 맛보는 자유에 대한 갈망이 연기 백 단의 두 배우를 만나 절절하게 와 닿았다. 비록 그 대가가 남루하고 매섭더라도, 기꺼이 발을 내딛는 그녀들의 내일을 응원한다.



내 미래의 집은 어느 형태일까




노매드랜드 Nomadland (2020)

미국 드라마

(감독) 클로이 자오/Chloe Zhao

(출연) 프랜시스 맥도먼드/Frances Louise McDormand, David Strathairn, Linda May, Bob Wells, Charlene Swankie

매거진의 이전글 누구나 뽑아 먹을 수 있는, 미나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