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도둑 Sep 05. 2017

기내식

feat. 와인

닭과 소, 그중에서 나는 닭을 선택했다. 그러자 기내식에는 닭고기와 스파게티, 샐러드와 빵, 비스킷이 나왔다. 음료는 맥주와 와인 중에서 고민하다가 와인으로 했다. 레드 와인을 달라고 했는데 자그마한 와인병과 함께 컵을 줬다. 적당히 달고 적당히 떫은 남아프리 카산 와인이었다.


와인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좋은 와인의 기준도, 그걸 느낄만한 미각도 없었지만, 달달하면서 깔끔 끝 맛이 나름 괜찮았다. 나의 입맛에는 딱이었다.


기내식을 먹는 내내, 비행기가 거칠게 흔들렸다. 테이블에 놓인 음식이 살짝 떨릴 정도로. 난기류를 벗어나자마자, 이번에는 음료를 잔뜩 실은 카트가 지나갔다. 다 먹은 음식을 치워주면서 커피, 차를 나눠주고 있었다. 나는 와인을 한병 더 달라고 했다. 장시간 비행기에서는 취하지 않고 못 배긴다. 똑같은 레드 와인으로.


스마트폰에 있는 영화를 하나 틀었다. '미드 나잇 인 파리'. 유럽행 비행기에 오른 사람에게 딱 좋은 영화가 아닐까. 비행기는 어린애들 몇몇 때문에 약간 소란스러웠지만 짜증 날 정도는 아니었다. 비행기가 공기를 찢고 날아가는 소리 위에 영화의 배경음악을 사뿐히 얹었다. 영화는 생각보다 재밌게, 기대보다 허무하게 끝이 났다.


앞에 화장실이 있는 좌석이라 발을 뻗을 수 있었다. 다만, 모니터가 의자에 달려있었는데 내 모니터는 고장이 났는지 의자에서 나올 생각을 안 했다. 두 손으로 끙끙 대면서 뽑으려고 애를 썼지만 실패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가뜩이나 할 것도 없는데 말이다.


덕분에 폰만 만지면서 글을 쓰게 됐다. 6시간 걸려서 도착하게 되는 곳은 암스테르담. 그리고 비행기를 한번 더 타고 가면 스페인, 말라가에 도착한다. 두 번째 유럽과 두 번째 스페인, 그리고 두 번째 말라가.


빨리 도착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눈을 다시 감아본다.

작가의 이전글 여행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