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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도둑 Oct 02. 2017

파리의 흑인지구

반짝반짝 빛나던 에펠탑 밑에서 작은 에펠탑을 팔고 있는 수많은 흑인들이 보였다. 그들은 작은 에펠탑을 주렁주렁 매달고서 관광객에게 들이댄다. 원 유로를 외치면서 다가오는 흑인들은 생각보다 위협적이었다. 나 혼자 돌아다니는 밤길은 더 무서웠다.


그 다음 날에는 시내를 하루 종일 걸었다. 숙소에서 루브르 박물관, 박물관에서 상젤리제 산책로와 거리를 지나 개선문까지. 그리고 개선문에서는 다시 에펠탑의 정원, 에펠탑에서는 노트르담의 성당까지. 수없이 걷고 또 걸었다. 혼자기 때문에 말없이 묵묵히 말이다.


그렇게 걷다가 힘이 들면 카페에 들러서 와인 한 잔에, 간단한 안주를 시켰고, 그래도 힘들면 큰 마트에 들어가 맥주를 한 캔 마셨다. 하루 종일 걸어서 생각했던 곳을 다 가고 나니 발바닥이 아팠다. 그래도 숙소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파리 남역에 가까웠을 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바닥에 깔린 네모난 보자기에는 알록달록한 나이키 신발과 휘황찬란한 금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흑인들이 있었다. 아니, 흑인들만 있었다. 나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둘러봤다. 해가 서서히 기울어지는데, 날씨까지 흐려서 꽤 어두컴컴한 거리에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만 보였다.


갑자기 약간 무서워졌다. 옆을 살짝 둘러보니 흑인 미용실이 보였다. 흑인 전용 미용실이라는게 생소해서 신기했지만 티를 내지 못했다. 한 블럭을 건널 때 마다 길거리에선 보따리 상들이 있었고, 하나같이 유명 메이커 신발을 팔고 있었다.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 그러나 뛰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게 움직였다. 그들은 나를 보며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내가 그들 사이를 뚫고 지나갈 때도, 흑인 미용실을 힐끔 힐끔 훔쳐볼 때도 나에게 신경을 쓰진 않았다. 그런데도, 나는 그 거리가 무서웠다. 그 거리에서는 내가 외계인처럼 느껴젔다.


얼마나 걸었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파리 북역이었고 더 거칠고 위험해보이는 흑인들이 있었지만, 관광객들도 많았다. 안심이 되자, 부끄러움이 찾아왔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을 무서워했다. 그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었고, 위협하지도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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