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졸다가

글도둑

by 글도둑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은지 오래됐다. 투 블록으로 나름 깔끔하게 정리했던 머리가 헝클어져 지저분하다. 간혹 날아오는 미용실 문자를 보다 결국 발걸음을 옮겼다. 자주 가는 역 근처에서 건물 2층에는 미용실이 2개나 있다. 서로 다른 브랜드인데 자르고 난 헤어스타일을 보면 뭐가 다른지는 잘 모르겠다.


예약 없이 불쑥 찾아가서 커트되냐고 물어본다. 둘 중 한 곳은 웬만하면 가능하다. 찾는 선생님이 있는지 물어보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한다. 예약을 안 하는 이유에는 귀찮음도 있지만, 어떤 디자이너 분을 만나게 될지 기대하는 마음도 있다.


잠시 기다리면서 짐을 맡긴다. 외투와 가방을 받아서 서랍장에 넣어주고, 가운을 입혀준다. 그 주머니엔 자연스럽게 열쇠를 넣어준다. 지정해주신 자리에 앉아 디자이너분을 기다리다 보면 목에 하얀 거즈 같은 걸 둘러주고, 이마에 얇은 플라스틱 막을 붙여준다. 머리카락이 옷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장치로 보인다.


누군가 내 머리카락을 만지고, 자르고, 다듬고, 정리한다.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눈을 감는다. 그리고 생각에 빠져든다. 이번엔 미용실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나에게 첫 번째 헤어 디자이너는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유치원에 다니던 형과 나의 머리카락을 직접 밀어주셨다. 화장실에 둘러앉아 위잉거리는 이발기가 귓가를 스칠 때문 눈을 질끔 감고 있던 기억이 떠오른다. 맨살에 뜨거운 이발기가 닿았다가 다시 차가운 이발기 선이 닿으면 놀라 움찔거렸다.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엔 아버지를 따라다녔다. 동네 이발소로 갔던 기억이 난다. 이발소의 풍경은 어색하면서도 정겨웠다. 아저씨가 가위와 이발기로 잘라주는 머리, 끝나고 줬던 요구르트. 그 요구르트가 맛있어서 아버지가 이발하러 간다고 하면 괜히 따라가서 구경하고 요구르트를 얻어먹곤 했다.


교복을 입는 학생이 되자 미용실이란 곳을 처음 가게 되었다. 머리를 감겨주시던 누나들, 옷을 받아주고 헤어스타일에 대해서 물어보는 디자이너들. 그때나 지금이나 과도하게 느껴지는 친절함은 미용실이란 단어와 어색함이라는 단어를 연관 짓게 만들었다. 미용실에 다니면서 비용이 껑충 뛰었지만 친구들과 함께 가서 제일 유행하는 헤어 스타일로 잘랐다. 그때는 다들 그렇게 잘랐는데 지금은 한없이 어색한 헤어 스타일이다.


처음 취직해서 거제도에 내려갔을 때, 우리를 교육하던 대리님이 '여긴 좋은 미용실이 없으니 웬만하면 부산이나 집 근처에서 자르는 걸 추천한다.'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지역에 따라서 미용실의 수준도 차이가 나는구나 싶었다. 실제로 경험해본 미용실은 나름 괜찮았다. 가격이 저렴해서였는지도 몰랐다.


회사를 관두고 집으로 올라와서는 집 근처 미용실을 다니기 시작했다. 머리카락이 지저분해지면 그냥 눈에 보이는 미용실에 들어갔다. 때로는 약속 시간이 보다 일찍 와서, 때로는 집 가다가, 때로는 쉬는 날에 갔다. 한 곳에서 자르지를 않았으니 찾는 선생님이 생길 리가 없었다. 다양한 사람의 손을 거쳐서 내 머리카락은 이리저리 형태를 바꿔나갔다. 빡빡 밀어도 보고 펌을 해서 곱슬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마음에 쏙 드는 헤어 스타일을 발견하지 못했다. 막상 예쁘게 머리를 하고 오더라도 집에서 한번 머리를 감고 나면 그 느낌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헤어 스타일에 큰 신경을 쓰지 않는 내 습관이 문제일 수도 있다.


나에게 미용실은 어색하지만 정겹고 편안한 공간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다. 과도하게 느껴지는 친절함과 서비스는 나를 주눅 들게 한다. 그러나 누군가에게 나의 머리카락을 맡기고 눈을 감노라면 편안함이 느껴진다. 뒷 목을 뜨겁게 눌렀다가 떼는 이발기에서 어머니의 손길이 떠오른다. 친근하게 요구르트를 주는 이발소 아저씨 대신 사근사근하게 결제해주고 문을 열어주시는 디자이너 분이 나름 정겹다. 만약 문을 열어주고 인사하기보다는 요구르트를 하나 주면 더 자주 가지 않을까 싶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