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원
글쓰기에 자신감이 없는 나에게도 최근 연구계획서의 작성이나, 영어로 논문을 쓰는 등 글을 써야 할 일들이 자주 생기고 있다. 물론 객관적 사실정보를 전달하고, 이를 통해 논리적인 가설을 세워 검증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다지 난도가 높은 작업은 아닌 듯 하지만, 글쓰기 자체에 익숙하지 못한 나에게는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왜 글쓰기에 어려움을 느끼게 되었을까?'
나는 어린 시절부터 문과적 성향보다는 이과적 성향을 많이 띄었던 것 같다. 주어진 문제에 대하여 수학적 방법을 이용해 부정할 수 없는 하나의 답을 구해내는 것이 더 쉽고, 재미있었다. 반면에 일기 쓰기, 독후감 쓰기, 편지 쓰기 등 온갖 정답이 없는 글쓰기와 관련된 활동은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숙제들이었다. 나는 정답을 구하는 것에 익숙했고, 나의 생각을 글로써 전달하는 일에는 큰 흥미가 없었던 것이다. 그랬던 나는 무엇 때문에 이제야 글쓰기에 관심을 가지고, 좋은 글을 쓰기 위해 노력하고자 하는 걸까?
이러한 이유를 머릿속에서 정리해보니 두 가지 정도의 이유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이제는 우수한 전달력을 가진 과학자가 인정받을 수 있다. 이전까지 나의 좁은 식견에서 과학이라는 분야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글쓰기 능력은 '가지고 있다면 좋지만, 없다고 문제 될 일이 없는 능력'이었다. 물론 여전히 최우선시되는 능력은 아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과학적 사실정보를 확인하고, 소수의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끼리의 정보공유에 그친다면 이러한 정보들은 빠르게 죽어가게 될 것이다. 이미 많은 분야에서 자신의 것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다른 분야와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에 있다. 그러한 새로운 가치 창출에 동참하고자 한다면, 다른 사람의 연구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내 연구내용에 대하여 흥미가 생기도록 비전문가들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는 글을 써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개인적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비과학자 집단에서도 쉽게 읽힐 수 있다면, 내 연구는 한 발짝 더 사람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다음으로 좋은 글을 쓰고자 하는 나의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 때문이다. 나는 '죽기 전 나의 생각들을 한 권의 책으로 써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가지고 있다. 나에게 그럴만한 시간이 충분히 주어진다면, 과학자로서 은퇴를 하고 난 뒤에는 여러 가지 내 머릿속에 맴도는 의문점들에 대해 깊이 공부하고, 나름의 정리를 통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볼 수 있다면, 누군가에게 읽히지 않더라도 무척 좋을 것 같다. 사람이라고 하는 동물이 다른 여러 동물들과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이는 것이 바로 '기록'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평생에 거쳐 쌓아 온 경험과 지식들을 집대성하여 나의 생각을 '기록'할 수 있고, 이것이 내가 다른 동물들과 다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개똥철학이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얻지 못하면 나 역시 여느 사람들과 비슷하게 완전한 공허로써 죽게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 공감을 얻고 계속 읽히며 후대로 전해진다면 나는 영원히 살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이러한 나의 꿈을 이루기에는 형편없는 글솜씨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벌써부터 포기하기에는 그 시간이 아깝다.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이상한 주제들로 글쓰기나 한다.’고 뭐라고 할 수 도 있겠지만, 앞으로 살아갈 날이 100년도 넘게 남았는데, 남은 백 년을 매일매일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뭐하러 새로운걸...’이라고 하며 살고 싶지도 않다. 나의 인생 마지막 페이지에서나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버킷리스트지만 꼭 도전해보자.
죽을 때까지 읽고, 쓰고, 공부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