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너무나 유명한 낭만주의의 대표작입니다. 그림 자체로도 유명하지만 수많은 패러디로도 유명합니다. 많은 이들이 이 그림들을 다시 그렸고, 콜드플레이의 앨범 재킷으로 쓰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무심코 지나치게 되는 그런 그림입니다. 사실 제가 낭만주의 그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에 그냥 지나쳤을 수도 있습니다. 낭만주의 그림들은 그 이름 그대로 사람의 감정을 고양시키고 마음을 움직히고, 그 역동적인 화면은 시선을 그림에서 뗄 수 없게 합니다. 하지만 이런 역동성은 오히려 감정적으로 피로감을 주고, 계속해서 그림을 바라보게 하는 힘은 떨어집니다. 금방 식상해져 버리지요. 저도 그런 이유로 이 그림을 한두 번 쳐다보고 다시 들춰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제가 놓쳤던 부분들을 보게 되면서 자주 인용하는 그림이 되었습니다.
일단 이 그림의 구도를 살펴보면 전형적인 삼각형 구도로 힘과 안정감이 느껴집니다. 자유의 여신이 치켜든 오른팔을 꼭짓점으로 하여 삼각구도를 형성하고 있고, 우리 시선은 자연스레 그녀의 오른손을 향합니다. 삼각형의 구도는 역시나 매우 안정적입니다. 아래의 두 꼭짓점이 위의 꼭짓점을 단단하게 받쳐줍니다. 밑에서 받쳐주기에 위로 상승하는 힘이 더욱 강하게 느껴집니다. 이런 안정감을 바탕으로 화가는 자유의 여신의 깃발을 통해 함께 전진할 것을 외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외침은 너무 직설적입니다. 전형적인 삼각형 구도의 식상함과 함께 옛시대의 지나간 외침으로 느껴집니다. 역시나 식상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의 ‘발’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보통 발은 신발 속에 감춰지거나, 조명을 받지 못해 어둡게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이 그림에서는 유독 발까지 빛이 닿아 있습니다. 발이 있는 곳은 가장 밑바닥에 있기에 빛이 닿기 어렵고, 때문에 가장 어둡기에 가장 안보입니다. 그런 ‘발’을 그린 것은 별 것 아닌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로 인해 이 그림은 저에게 새로운 그림이 되었습니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프랑스 7월 혁명을 그리고 있습니다. 혁명의 현장은 항상 참혹합니다. 혁명은 바닥부터 가장 위까지 모조리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혁명의 역동은 그 격차에서 나옵니다. 위와 아래의 격차. 사치의 극을 달렸던 왕가와 한 끼가 힘겨웠던 민중들 사이의 엄청난 격차는 혁명을 더욱 격렬하게 만듭니다. 그림에서도 수직의 격차는 역동성을 담보합니다. 자유의 여신이 높게 들고 있는 깃발은 낭만파스러운 감정의 고양을 만들어냅니다. 그녀가 추구하는 깃발 아래 달려가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게 합니다. 가슴에 뭉클한 무언가를 만듭니다. 그런데 이런 감정의 움직임은 바닥을 디디고 서 있는 자유의 여신의 발과 그 주변의 참혹한 현장에서 힘을 받고 있습니다. 바닥은 진창이고 감정을 가라 앉힙니다. 죽음은 도처에 있고 그것이 현실입니다. 깃발에서 보이는 자유, 평등, 박애라는 삼색기의 이상과는 다른 현실입니다. 눈에 보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현장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른 감각이 필요합니다. 사냥꾼은 땅에 귀를 대어 보기도 하고, 궁사는 바람을 느끼기 위해 눈을 감기도 합니다. 현실은 피부로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야 빨리 반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장은 공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함께 울 수 있습니다. 죽어가는 동료의 모습을 보면 분노하게 되지만, 그들을 잦아드는 숨소리를 듣게 되면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이런 비시각적 요소를 화가는 시각적인 요소로 표현해 놓았습니다. 그게 바로 바닥에 발을 대고 있는 그녀의 “발”입니다. 그림 속 자유의 여신은 깃발을 들고 있지만 바닥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옆에서 함께 있는 동료들을 발로 느끼고 옆에서 죽어가는 동료들의 마지막 숨결까지 느끼고 있습니다. 가슴으로 공감하고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도 저 앞의 나아갈 곳을 강렬하게 바라보고 동료들을 이끌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자유의 여신의 모습 속에서 진부한 표현이긴 하지만 진정한 리더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현장을 온몸으로 느끼고, 구성원들과 공감하면서, 조직의 가야 할 방향을 정해서 먼저 힘차게 나아가는 리더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리더들을 만나보면 다른 건 못해도 현장은 매우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현장 출신인데, 내가 실무부터 해왔기 때문에, 내가 전문가인데 등등의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앎은 시각적인 앎이고, 과거의 앎입니다. 현장에서 유리된 채 위에서 내려다보며 잘 알고 있다고 말하거나, 과거의 경험을 현실로 끌어오기 마련입니다. 현장은 알 수 있는 게 아니고 느끼는 것이고, 지금 그들의 일에 공감하는 것입니다. 내가 안다고 말하는 순간 현장과는 멀어집니다. 내가 모른다는 생각으로 함께 느껴야 알 수 있는 게 구성원들의 목소리고 지금 이 순간의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아는 건 쉽지만 느끼고 공감하는 건 어렵습니다.
1984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그의 르포성 에세이인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빈민가를 찾아간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기자 출신으로 광산 노동자나 도시빈민들의 삶의 현장 속에 뛰어들어서 에세이와 소설을 쓰곤 했던 그조차도 ‘그들과 함께 한다고 말하지만, 참기 어려운 것은 그들의 냄새였다.’고 토로합니다. 머리로는, 눈으로는, 통계수치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느끼고 공감하지는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현장의 도축장에서 몇 개월씩 일하면서 ‘고기로 태어나서(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라는 책을 쓴 한승태 씨도 비슷한 고백을 합니다. 살아가는 게 더 힘들 것 같은 참혹한 환경 속에서도 살고자 하는 동물들에 연민을 느끼면서도, 그들의 분뇨 냄새와 컹컹거리는 소리에 분노하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기 어려워합니다.
어쩌면 아는 것은 쉽습니다. 느끼고 공감하는 일이 어렵습니다. 느낌은 강렬합니다. 그렇기에 그 느낌은 나 자신을 향하기 쉽습니다. 익숙한 나의 느낌과 감각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자유의 여신처럼 맨발을 벗고 차가운 땅의 온기를 느껴야 합니다. 감각을 활짝 펼쳐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 감각을 최대한 넓게 펼치는 게 자유의 여신이 들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첫걸음은 당연히 깃발이 아닌 ‘발’ 임을 이 그림은 이야기하고 있음을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