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스투키
외로움이란 말을 몰랐을 적에도 그 느낌은 알고 있었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셨다. 항상 집에 혼자 있었고 나의 부모님의 얼굴보다 티브이에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이 더 익숙했다. 하지만 티브이 속 사람들과는 대화를 할 수 없다. 나는 그저 아무도 없는 곳에 웅크리고 멍하니 티브이를 바라볼 뿐. 내 곁엔 아무도 없었다. 바보가 된 것처럼 입 벌리고 티브이만을 바라보았다. 부모님이 오시기 전까지. 그러다 어느 날부터 부모님보다 티브이를 보는 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이 시작되면 부모에게도 시큰둥 해졌다.
미취학 아동 시절부터 훈련받아온 혼자의 익숙함은 내 유년기에 큰 영향을 주었다. 학교에 있을 땐 친구들과 함께였지만, 집에선 늘 혼자였다. 밥 먹을 때도 혼자. 티브이 볼 때도 혼자. 그저 집안에 혼자. 그 혼자가 익숙해지고 이윽고 편해졌다. 그러나 함께라는 게 불편해진 건 문제였다. 그래서 나는 외로움을 모르는 줄 알았다. 혼자 있어도 괜찮다고, 혼자서도 잘 해낸다고. 나 자신을 언제나 다독여왔다. 그리고선 혼자서 뭘 못하는 사람들을 내리 깔봤다. 혼자서 밥을 못 먹네. 영화도 못 보네. 같은 생각들. 난 뭔가를 혼자서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고 우스웠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난 남들과 함께한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차라리 혼자가 편했다. 날 잘 봐준 사람들로부터 스스로를 격리시켰다. 그리고선 좋아했다. 내가 혼자라는 사실을.
그러다가 마음속 무언가 빈 게 느껴졌다. 처음엔 이 빈 것이 무언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정도 머리가 들어차고 이 세상에 대해 꽤 많이 이해했다고 자부했던 고등학생 때에 겪은 이 비어진 느낌은 원인 모를 불치병과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있어도 외로움을 느끼고, 누군가가 잘해주면 경계를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누군가를 그리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음속에 검은 커튼이 내려앉은 듯 내 감정을 끊임없이 강제로 진정시키려는 느낌. 짝사랑의 스파크도 눈앞의 불의도 감동적인 영화에도 난 최대한 스스로 진정을 시켰다. 시체 영안소에서 죽은 사람에게 씌우는 천을 내 감정에다가 덮어 놓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내 감정은 살아있다는 걸 알리려 미약한 몸부림치는듯한 느낌이었다. 이러한 간지러운 부끄러움이 반갑지 않던 나는 내 감정을 산 채로 묻어버렸었다.
그때부터 내가 웃고 떠들고 밝게 행동하는 것은 타인과 어울리기 위한 연기였다. 눈까지 웃어야 진정한 웃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웃음을 연기하는 내가 웃을 땐 눈은 한없이 고요했고, 가만히 있는 광대뼈는 억지로 당겨 팔자주름을 일부러 만들어내는 부자연스러운 웃음였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점차 사람들을 대하기가 힘들어졌고, 나는 소통을 점점 거부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의 삶엔 관심이 없다는 듯이 나 스스로만의 세상에 빠져들어갔다.
이러한 문제점은 성인이 되고 더욱 심각해졌다. 새 친구를 사귈 수 없게 된 것이다.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짓기 시작한 나만의 세상이 성인쯤 되어서 완성돼가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세상에서 나오길 거부한 수염 난 피터팬이었다. 지저분하고 퀴퀴한 내 방이 나의 네버랜드였다. 웬디가 만약 네버랜드에 왔다면 후크 선장이 아닌 나를 무찔러야 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이러한 세계에 날 가뒀고 타인에 대한 모든 걸 간섭하지 않았다. 그렇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다른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연료가 되어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하지만 나는 연료가 없어 그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편적인 대화로 끝내곤 했다. 만남의 지속성이 없는 1회용 만남과 플라스틱 러브밖에 할 수없었다. 그걸로 끝이었다. 더 이상 따로 연락하고 싶을 정도의 궁금증은 안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살다 보니 비로소야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고 있다. 내가 만든 네버랜드를 나가는 방법을.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 중인 내 영혼을 응원하고 있다. 외로움이라는 내 마음속 커튼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외로움에 맞서는 것은 내 방 창문의 커튼을 걷는 것부터 시작된다. 내방만 비추는 형광 빛 대신 세상을 비추는 태양빛을 내 방에 들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은 같은 태양빛을 공유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태양이 비치는 곳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
밖을 나가며 인간에 대한 불신과 의심을 뒤로한 채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좋은 부분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그리고 외로움 역시 나 자신의 것이란 사실을 받아들인다.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편해진 마음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내게 한없이 호의적이고 날 좋게 생각해 주는 것 같다. 나 역시 여유를 가지고 그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다. 그 추억은 타인에 대한 그리움과 호기심으로 그리고 또 이야깃거리가 된다. 그리고선 생각한다. 외로움이라는 건 남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진정시켰던 가냘픈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 그렇기에 외로움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 외로움이 있었기에 함께의 가치를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검은 커튼을 떼어내진 않을 것이다. 언제든 칠 수 있게 준비할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외로움을 곁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은 외로움이 고독의 사유로 승화될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