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너를 기다리고 있어

영스

by 글도둑

어떤 상황의 가변적 요인, 바뀔 수 있는 것. 우리는 이것을 변수라고 부른다. 변수는 언제 어느 곳에서든 존재하며 우리의 인생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을 방해하곤 한다. 하나의 길보다는 여러 개의 갈림길을 만들고, 평평한 땅보다는 온갖 걸림돌을 심어 놓는다. 덕분에 우리는 다양한 물감을 가지고 삶을 색칠할 수 있다. 나는 이런 변수가 좋다. 내가 변수를 좋아하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비 소식의 유무였다. 그 이유는 고등학생 때 느꼈던 두근거림 때문이다.


내게 학교생활은 마냥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사는 곳과는 멀리 떨어진 약 1시간 거리의 아는 친구들 하나 없는 학교로 입학하게 된 내게 고등학교는 중학교에서 그냥 이름만 바뀐 똑같은 학교일뿐이었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에 나는 점점 재미와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교 시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방과 후 수업을 듣기 위해 저녁을 기다리고 있었다. 창문 너머 운동장에는 집으로 향하는 친구들이 가득했다. 전날 비가 와서 그런지 운동장이 진흙 범벅이 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집으로 가는 학생들은 신발에 진흙이 묻든 말든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닌 것처럼 보였다. 그때 운동장 한가운데 걸어가고 있는 내 짝꿍을 보게 되었다. 반가움 반 부러움 반, 나는 창문을 열고 그에게 인사했다. 마침 그도 운동장 한가운데에 내게 인사를 남겼고 그 인사는 무려 일주일을 넘게 운동장에 머물게 되었다. 나는 학교를 오가며 그와 계속 인사를 나누었고 그것은 두근거림의 시작이었다.


이 두근거림을 느끼게 하는 또 다른 순간이 있다. 영화 ‘인턴’의 OST가 흘러나오면, 마치 내가 주인공 '로버트 드 니로'가 된 것 마냥 이불을 접고, 그 위에 살포시 베개를 올려놓는다. 똑같은 벨소리와 똑같은 행동에 지쳤을 법한데 커튼을 올리고 창문을 열어 밖을 바라보면 다를 수 있다는 기대감을 품게 된다.


아주 맑다. 구름의 흐름이 오늘은 비가 오지 않을 것을 내게 넌지시 알려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인터넷으로 날씨를 확인하지만, 오늘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히 인지한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으며,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잘 알기 때문이다. 빗방울은 볼 수 없어도 햇빛이 나를 기다리기에 외롭지만은 않다. 그래도 혹시 몰라 우산은 챙긴다. 밖으로 나와보니 이렇게 맑은 날에 집에만 있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카페에 들어가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수다를 떠는 사람, 휴대폰을 하는 사람, 책을 읽는 사람, 공부를 하는 사람, 다이어리를 적는 사람, 통화를 하는 사람, 그리고 일을 하는 사람. 그중에서도 내 눈에 가장 들어오는 것은 사색을 하는 사람인데, 턱을 괴고 어느 한 곳을 응시하는 자세가 내게는 묘한 긴장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가끔은 이렇게 사람 구경을 하면서 긴장감을 느낀다.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있다면 어느 한 사람에게 집중하고, 그 사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을 위해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련의 행동들이 내게는 다시없을 기회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충분한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때 한 손님이 투덜투덜 머리에 손 우산을 쓰며 카페 안으로 들어온다. 무슨 일이 있는지 내 호기심은 또 반응한다. '여우비', 변수가 찾아왔다. 밖으로 나와 옷과 함께 먼저 인사를 건네고 우산을 편다. 그제야 빗방울들도 캐노피를 따라 흐르며 내게 인사를 건넨다. 예고 없이 나타난 비 덕분에 나는 약간의 설렘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고 내 하루는 더욱 풍성해져만 갔다. 그렇게 내일도 내 삶이 풍성해지도록 계속 기다릴 것이다, 우산을 가지고 다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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