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스
삶에 지쳐 머리가 복잡해질 때, 나는 산에 오른다.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는 나의 학교생활에서 처음으로 개강을 늦췄고 급기야 등교까지 막았다. 우여곡절 끝에 학기가 시작되었고 중간고사가 끝난 지금,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다. 내가 좋아하는 헬스장, 노래방, 영화관도 좀처럼 예전만큼 나와의 거리를 좁혀주지 않았다. 내게 가장 가까운 것은 산뿐이었다.
산에 오르는 날의 시작은 여느 여행처럼 설렘이 동행한다. 물, 손수건, 양말, 붕대, 반창고 그리고 우산을 챙겨 밖으로 나와 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새벽 첫차는 새해 첫날의 해를 보며 소망을 띄우듯이 그날의 다가올 좋은 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채워져 있다. 이 기대감을 듬뿍 받아 산 입구에 내리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새벽 등산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그 묘미는 바로 새벽안개다. 그 안갯속에서 품어져 나오는 숲 내음과 생명의 소리가 나를 가장 편안한 상태로 만들어준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기 전, 귀에 꽂은 이어폰을 내 숨소리만 들릴 정도의 충분한 볼륨으로 맞춘다. 가슴을 통해 심장의 소리가 느껴지고 코를 통해 호흡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온몸으로 산소의 이동을 느껴본다. 숨이 기도를 지나 마음속 어딘가에 다다른다. 내 마음속은 허기진 상태임을 느낄 수 있다. 배고픈 건가? 배고픈 것은 무엇일까? 배가 고픈 상태는 포만감이 들지 않는 상태인가? 포만감의 상태는 무엇일까? 만족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인가 만족하지 못한 상태인가? 숨소리는 절대 답을 해주지 않는다.
나를 바라본다. 그저 운동하고 노래 부르고 영화 보기 좋아하는 ‘어른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른이 되기 위해 내 안에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했는데 끊임없이 넣어도 채워지지 않는다. 그 답이 무엇인지, 채울 수 있는 게 맞는 것인지, 꼭 채워야 하는지 질문한다. 왜 채우고 싶어 할까? 그냥 ‘어른이’로 사는 것도 괜찮을 텐데 나의 욕심은 아닐까? 그러나 때로는 욕심이 없는 게 문제가 되고는 한다. 학업, 연애, 명예, 부, 성공 등. 어떤 동기가 없어서 실행에 옮기지 않았던 경험이 있다. 그것이 내 최대 단점이다. 좋은 성적, 좋은 직장, 좋은 인간관계에 대한 갈망이 크지 않은 것. 이런 나를 지인들은 걱정 아닌 걱정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정상에 올라 길게 호흡한다. 행복하다. 정상에 올라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정상에 오르는 동안에 마주쳤던 감정들 덕분에 행복하다. 또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생각하는 과정은 정말 감사하다. 이 모든 것은 고통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통도 오랜 경험과 노력을 통해 잠시 무뎌지고 익숙해질 수 있다. 마치 정상에 도착한 내가 수천 번의 발걸음을 잠시 잊은 것처럼.
또한 정상에서의 호흡은 왠지 모를 특별함을 갖는다. 그러나 산 입구의 공기와 별 차이는 없다. 그런데도 바닥과 정상의 차이를 두는 것은 인류가 무지를 인정하고 과학의 진보를 이룩한 것처럼 나의 무지함과 무능력함을 스스로 인정하고 더 나은 내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가보지 않은 곳을 탐험하고 오르지 않은 곳을 올라보는 자세. 이 자세는 인생 전반에 걸친 내 축이 될 것이다.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호흡은 많이 안정된 것처럼 느끼지만 불규칙하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산을 오를 때보다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되어 훨씬 다치기 쉽다. 이럴 때일수록 호흡을 안정시키고 자세를 낮추어야 한다. 어떤 일을 급하게 처리하다 보면 하나씩 미끄러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또한 나를 낮추지 못해서이다. 그래서 그 작은 미끄러짐이 나중에는 나에게 큰 화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항상 겸손할 줄 아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느덧 산 입구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먼지떨이 기를 잡고 남은 잡념을 털어낸다. 흩어져있던 일련의 조각들이 맞춰지는 기분과 함께 몸이 한결 가벼워진다. 하지만 그 가벼움도 잠시 이 여정의 끝을 무겁게 만드는 것이 있다. 하산 후에는 다시 그 산을 바라보는 연습이다. 내게는 아직 의식하기 어렵고 잊기 쉬운 행동이다. 내가 산을 오르고 내리는 동안 나를 도와주었던 소중한 것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사랑. 나는 이 표현이 익숙해질 때까지 계속 산에 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