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 서평 공모전, 나로 존재
책은 그렇다. 아무런 소리 없이, 미동 없이 가지런히 책장에 꽂혀있지만, 그것은 살아있다. 어떤 운명적
인 만남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처럼, 책을 펼치는 순간 역사는 시작된다. 나는 그렇게 가슴 벅차게
이 책을 만났다. 한 지인이 교수님으로부터 추천받은 책이라고 말하며 김종원 작가의 <사색이 자본이다
>를 소개해주었다. 나는 그 지인의 교수님은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책을 선택하는 안목이 탁월하
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좋은 책”을 읽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던 나는, 누군가가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책에 대해서는 마다하지 않고 읽어보려고 노력했고, 교수님을 통해 추천받은 책들은 모두 내가 다른 사
람에게 또 추천하는 책들이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김종원 작가는 이 책의 프롤로그를 펴며 오르한 파묵의 멋진 글귀 하나를 적어두었다. “어
느 날 한 권의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러한 짜릿한 책과
의 만남 끝에 독서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독서모임’ 채팅방에 모였을 것이다. 독서가 주는 힘을 깨닫고,
그 에너지를 유지하고 싶어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다면 ‘독서’
란 무엇일까? 단순한 사전적 정의를 보자면 독서는 “책을 그 내용과 뜻을 헤아리면서 읽는 것”이다. 책
을 ‘읽는 것’에만 그치는 것은 진짜 독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헤아리면서 읽는다는 것은 무엇
을 뜻하는 걸까?
옛날 예능 중에 이런 게임이 유행했던 적이 있다. 입으로는 노래를 부르면서 손으로는 돈을 세는 것이
다. 완벽하게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돈을 더 많이 또 정확하게 센 사람이 승리하는 게임이다. 게임이 재
미 있어 보여서 집에서 언니와 같이 해본 적이 있었는데,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돈을 제대로 못 세
거나, 노래를 부르다가 돈 세는 소리가 입으로 새어 나오거나, 아니면 어쩌다가 돈을 정확하게 세었을 때
는 감으로 찍어 맞춘 것이 전부인 정신없는 게임이었다. 시대가 발전하면서 이 게임과 같은 멀티태스킹
을 잘해야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게 되었는데, 실은 멀티태스킹이라는 말은 사람을 향해 쓰였던
말이 아니다.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 분야에서 실버 노틸러스 상을 수여한 셀레스트 헤들리도 자신의
책 <말 센스>를 통해 이야기한다. “멀티태스킹이라는 표현은 애초에 사람을 대상으로 쓰인 말이 아니라,
컴퓨터를 대상으로 쓰인 말이다. 인간은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는 것이 아니라, 주의력의 전환을 하고
있는 것뿐이다.”
인간의 주의력과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어서, 여러 가지의 일을 동시적으로 수행해야 할 때는 100%의
에너지를 두 가지 일에 쪼개어 나눠 사용해야 한다. 업무처리에는 유용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
업은 셀레스트 헤들리가 말한 것처럼 컴퓨터가 더 잘할 수 있다. 앞으로 인공지능 산업이 발달해서 빅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AI 로봇들이 상용화되기 시작하면, 효율적인 업무성과로 에이스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인공지능 로봇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이지성 작가가 인공지능 시대
를 대비하기 위해 펴낸 책 <에이트>에서도 이와 같은 일화가 나온다. “2014년 무렵의 일이다. 인공지능
켄쇼가 월 스트리트의 심장이라 불리는 골드만삭스에 입사했다. 당시 골드만삭스에는 월 스트리트 최고
의 트레이더 600명이 근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켄쇼가 근무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598명이 해고당
했다. 켄쇼가 그들이 한 달 걸려서 할 일을 몇 시간 만에 끝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 월 스트리트에
서는 인간이 하던 일의 약 90%를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다.”
그렇다. 이미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서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는 것처럼,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
지능 로봇은 망각하는 존재인 인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에
게도 로봇과는 견줄 수 없는 눈부신 능력이 있다. 그것은 바로 ‘헤아리는 능력’이다. 로봇은 이미 드러나
있고, 입력되어 있는 정보들을 시시각각 끄집어내는 단순 능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은 ‘사
색’과 ‘철학’을 통해 이미 드러난 정보뿐만이 아니라, 그것들로부터 새로운 것을 창조해내고 감추어진 원
리까지도 캐치해낼 수 있다. 우리가 어릴 적 머리를 쥐어뜯으며 공부했던 상대성이론은 아인슈타인이 ‘사
색’을 통해 발견해 낸 원리이다. 우리가 사랑하는 작품, 파우스트의 저자 괴테도 그의 삶 자체가 ‘사색’을
위한, ‘사색’을 사는 삶이었다. 인공지능 로봇은 무한정의 돈을 정확하게 세면서 노래도 완벽하게 부를
수 있겠지만, 그 시간 동안 느껴지는 ‘불편함’과 인간의 ‘유한함’, 왜 이렇게 안되지? 하는 ‘의문’ 그 질문
으로부터 도출되는 수많은 생각, 즉 ‘사색’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은, 이 사색이라는 인간만이 유일하게 해낼 수 있는 아름다운 능력을 현대
인들은 상실해가고 있다는 것이다. 독서한다고 할지라도 그저 ‘읽는 것’에 그쳐버리기 마련이다. 그것을
‘사색’하고 헤아리면서 그것이 주는 의미와 그 의미가 나의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지에 대한 생각까
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독서로 많은 정보를 머릿속에 입력하지만 안개처럼 바람이 불면 사라져 버린다.
체화되거나 체득되어서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먼지처럼 쉽게 날아간다. <사색이 자본이다>는 이런 현
대인들에게 인간 고유의 능력인 ‘사색’의 힘을 회복하도록 돕는다. 독서를 통해 헤아리며 사색하고, 그것
이 곧 나를 성장시키며, 세상을 바라보는 견문을 넓히며, 배움의 깊이를 더하고, 인간관계에 대한 태도를
달리하는 생각하는 사람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당신은 길을 걷다가 얼마나 자주 하늘을 쳐다보는가? 길을 걷다가 마주한 작은 꽃, 간밤에 세상을 휩쓸
고 간 태풍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당당히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는 꽃을 보며 가슴이 벅차오르는가? 당신
이 책을 읽고 덮었을 때, 가슴에 두근거림이 남아있는가? 또 그 두근거림은 당신의 삶을 변화시키는가?
수많은 책을 읽지만 떨리는 가슴이 없다면, 오늘 하루를 살다가 마주한 고통 속에서, 기쁨 속에서, 고독 속
에서 시가 새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 책을 집어 들고 차갑게 굳어버린 가슴과 마음을 따뜻하게 녹
여야 할 것이다. 그리고 ‘사색’하라. 그때서야 비로소 이 지극히 얇고 가벼운 종이 위에 누워있는 이야기
들이 우리네 가슴의 토양을 갈아엎는 감동의 홍수를 일으킬 것이다.
“책이란, 소설이란, 잉크로 적셔진 삶이란,
지극히 가벼운 종이 위에 누워있지만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무게를
우리 가슴 한편에 쏟아붓는다.”
- 나로 존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