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너무 어두워서 깊은 구멍을 보는 듯 할 때가 있다. 촘촘히 박혀있는 별이 아니었다면 필시 떨어져버리리라 생각 될 정도로. 떨어지지 않도록 우리를 땅으로 당겨주는, 아니 혹은 저 깊은 심연에서부터 우리를 밀어 올려주는 힘은 아마도 각자의 명분이지 않을까. 저마다의 사정이 발 디딜 흙이 되고 자그마한 별빛이 되어 모두 함께 흑색으로 뒤섞여 엉망진창이 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어쩌면 가끔은 나를 옥죄는 명분을 내려놓고 날개옷을 입은 선녀처럼 나무꾼을 두고 훨훨 떠나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 세상의 가장 놀라운 부분이 그것을 쉽지 않게 만든다. 내가 딛고 있는 땅과 내가 바라보는 하늘 속에서 온전히 나만의 명분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온전히 나를 위한 날개옷은 애초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옷을 입고 자 이제 날아오르자, 준비를 했어도 소매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어서는 출발조차 할 수 없는 것이 명분이 중요한 이 세상에서 어찌 보면 당연한 것 아닌가.
‘시작은 쉽지만 포기는 어렵다’
사람이란 그들의 머리는 깊이를 모르는 심연에 항상 향해있으면서도 두 다리로는 굳건히 항상 땅을 향해 서있는 모순적인 존재이다. 심연 속의 검정은 곧 불변이고 안정이다. 그 어떤 색을 섞어도 항상 흑색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 구덩이를 두려워하면서도 머리끝은 절대적 불변의 안정을 향해 열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인간의 모습은 현재에 안주하고 미래를 두려워하면서도 발전과 변화를 갈망하는 모양새를 그대로 표현해놓은 미술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들은 불변을 열망해 꼬이고 꼬인 실타래 같은 명분으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실타래를 풀겠다고 덤비다 또 다른 실타래를 꼬아버린다. 결국 세상에 아주 단단히 묶여버린 어떤 괴짜들이 다른 자들의 느슨한 실타래를 도리어 단단히 꼬아버리는 모습도 볼 수 있다. 그렇게 점점 단단해져 가는 것이 이곳이다. 역시 실타래를 풀기보다는 꼬기가 더 쉬운 법 같다. 그건 세상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놓은 법칙이다.
점이 모여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이 되듯이 명분의 실타래는 쌓이고 쌓여 도저히 분리할 수 없는 덩어리가 된다. 그저 얽히고설킨 명분 뿐이었던 이 덩어리는 이제 누군가에게 목표나 결과물, 즐거움 혹은 행복. 그 외에 수많은 것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 덩어리는 마치 색색의 고무찰흙처럼 처음에는 각각의 뚜렷한 색이 있다. 하지만 너무 오래되고 겹쳐져 수많은 색이 섞여버린 찰흙의 덩어리는 점점 심연의 색을 닮아 바래가고 최후에는 검은 구멍이 되어 나를 세상에 잡아두는 힘을 잃고 사라져 버린다. 사람의 머리가 향한 저 심연은 사실 너무 오래되고 뒤섞여 형체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더 이상 변하지 않게 된 명분들의 무덤이다. 하지만 역시 흑색이 되려면 너무나도 많은 색들이 섞여야 한다. 완벽한 검정이 되기는 너무나도 어렵다. 이 또한 세상이 존재하기 위해 스스로 만들어놓은 법칙이다.
세상은 명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꼬여버린 실타래와 섞여버린 색은 서로 분리되지는 않기에 나는 세상을 뜯어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새로운 명분과 실타래와 찰흙을 덧붙여 조금씩 변화시켜 나갈 수는 있다. 이는 내가 보는 세상의 비범한 부분이다. 과거를 지울 수는 없지만 미래를 변화시킬 수는 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지우고 고칠 수는 없지만, 덧칠 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끊임없이 실타래는 얽히고 세상은 만들어져 나간다. 우리는 이곳에서 벗어날 수 없기에 꼼짝없이 심연에 반하지만 변화하고 발전하기 위해 그것을 닮아가면서 살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