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영스

by 글도둑

“안녕”과 함께 서로의 위치로 돌아가는 거리에서 무거움을 느꼈다. 《죽은 자의 집 청소》라는 가볍지 않은 책을 받았기 때문이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곱씹어 보았다. 먼저, 작년에 읽었던 《죽음의 에티켓》이라는 책이 떠올랐다.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과 생을 떠난 후 그 사람 주변의 모습을 담담하게 이야기해주는 책이다. 그 책을 읽고 부모님과 죽음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았고 간단하게 유언장을 적었던 시간이 생각났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뇌리에 꽂힌 나날이었다. 과연, 이 책도 내게 그런 영향을 줄까?


사실, 구매는 하지 않았지만, 눈에 띄는 책이었다. 매월 서점을 방문하는 날이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서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그곳에는 읽었던 책, 읽고 싶은 책, 읽기 싫은 책 등이 다양하게 있지만, 그 책은 반갑기는 한데 읽기는 싫은 책이었다. 최근, 희극인 박 모 씨의 자살 소식이 내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 간의 만남이 줄고 혼자 지내는 시간은 늘고, 날씨는 추워지고 기분이 우울해지는 현상을 나만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니었나 보다. 너무도 슬펐고 나는 여전히 그 책의 목차조차도 펴보지 않았다.


살짝 무거워진 주말을 끝으로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됐다. 저번 학기는 비대면 수업으로 인해 항상 집에 홀로 있었고, 식사 또한 홀로 했었다. 당연히 맛있는 음식도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것이 되었고 나는 기계적으로 배를 채우곤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엄마가 손목 수술을 하시는 바람에 몇 주간 출근하지 않게 되셨고 나는 식사를 같이할 사람이 생겼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식사는 나를 다시 가볍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식사 후 나는 <영화와 문학>이라는 수업을 들었다.


오늘 수업은 조조 모예스의 소설 《Me before you》를 읽고 토론을 하는 것이었다. 이 소설에는 젊은 사업가로서 성공한 ‘윌 트레이너’가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해 사지 마비 환자가 되고, 그의 임시 간병인 ‘루이자’가 그를 만나 변하는 모습이 담겨있다. 윌은 완벽했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어 존엄사를 원했고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루이자는 물었다. “그냥 내 곁에서 살아주면 안 되나요?” 나는 다시 무거워지는 느낌을 받았고 여전히 그 책의 목차조차도 펴볼 수 없었다.


수업이 끝나고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비를 좋아하는 나지만,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날은 썩 좋지만은 않다. 약속이 있어서 먼지 묻은 3단 우산을 꺼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매번 가는 교보문고가 아닌 영풍문고에서 책을 구경하게 되었다. 그 때문인지 서점에서 풍기는 날카로운 종이의 향기가 오늘따라 무딘 것 같았다. 몇 권의 책을 고른 후 베스트셀러 코너로 향했다. 반가운 책들 중심에 그 책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 책은 날 왜 이토록 따라다니는지 궁금했고 더는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결국, 나는 그 책의 서문을 열게 되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일까? 또,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또 무엇일까?’ 그 책은 가벼운 손짓보다는 무거운 공수(拱手)로 날 반기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 책장에 꽂혀있는 그 책을 책상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여전히 읽을 수 없었다. 지금 내 마음이 책의 무게를 견딜 수 없어 쨍그랑하고 깨질 것만 같은 상태이기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쯤이 된다면, 비로소 죽음을 가볍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네가 내게 무겁지 않은 것처럼.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명분있는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