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넬 파크

바티스투키

by 글도둑

나는 과거를 잘 기억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들이 가슴 얼큰해지는 추억으로 미화하는 군 시절 무용담을 들을 때 냉소적인 입꼬리를 올리곤 한다. 아직도 내가 군대 때가 좋았다고 말을 못 하겠는 건 내가 여기를 나갈 수 있을까라는 수천수만 번의 자문의 순간들을 아직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없는 이야기에 갇힌 것만 같은 이 기분. 하루하루 나를 지쳐가게 하는 통제와 규율들. 거기에 수반되는 남자들의 야만성과 정치판까지 모든 요소들이 나를 못살게 구는 것 같았다. 나름 시간이 지나 인정도 받게 되고 소중한 인연들 역시 많이 맺었지만, 그 시간들을 함부로 미화시키기에는 왠지 모를 거부감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 시절 나에게 아름답게 기억되는 풍경이 하나 있었다.


샤넬 파크. 야간 위병소 근무 설 때 멀리 보이는 산에 있는 모텔이었다. 그곳은 밤이 되면 연분홍빛 네온사인을 켰다. 내가 신병으로 전입 오고 부사수 생활을 할 때 야간 위병소에서 가끔 선임들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정확히는 자신의 군 생활에 대한 감상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일 것이다. 선임의 뒤에서 잠자코 얘기를 들으며 경계와 긴장을 늦추던 않던 나는 그들이 군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이나 삶의 투영 그리고 전역에 대한 가냘프지만 애절한 열망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을 떠나보내고 상병이 되니 나도 어엿한 사수가 되어있었다. 군 생활에 기름때처럼 찌들었을 때라 나는 하루하루 지쳐가면서도 신병에 대한 기대감, 휴가, 꿀 같은 일과를 기대하면서 작은 것에도 최대한 행복을 찾으려 했었다. 나 역시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행복들이 시간이 지나 미화되어 추억이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부대는 산허리에 있어서 그런지 밤이 되면 어둠이 더욱 짙게 깔렸다. 짙푸른 어둠 속에서 샤넬 파크란 글자로 은은하게 빛나던 연분홍빛 네온 사인은 군 생활에 지쳐가던 자들을 위해 센치한 빛을 비췄다. 부사수와 사담을 나누며 멍하니 바라본 전방에는 샤넬 파크가 은은한 존재감을 비치고 있었다. 밤하늘의 어둠에 걸린 연분홍빛이 별빛에 반사되어 그런지 위병소 너머의 세상은 아른거리는 신기루 같았다. 부사수에게 말을 많이 거는 편이었던 나는 그 빛에 몽롱해질 때쯤 말을 잠시 멈추고 침묵을 즐기곤 했다.


그렇게 샤넬 파크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속에는 작은 평온과 동시에 촉촉이 젖은 희망이 일곤 했다. 이등병, 일병 시절의 서러움을 딛고 그때 그렇게 바라던 계급에 있었다. 군대라는 어두운 터널을 걷고 있어도 저 빛이 날 인도하는 듯이 느껴졌기 때문이었을까. 샤넬 파크를 보면 그 사실이 더욱 상기되었다. ‘내 선임들 역시 저걸 바라보며 낮과는 다른 밤의 이야기를 해줬던 거구나.’ 선임들의 기억과 감정이 네온사인 빛에 맺혀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그 빛이 더욱 애틋해 보이고 부사수에겐 감상적인 얘기를 하게 되었다. 부사수 역시 밤이슬 젖은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이런 내 얘길 잘 받아줬다.


“박민혁 상병님은 상병 되셨을 때 기분 어떠셨습니까?”


“최고였지. 근데 아직 50% 남은 거 보고 조금은 다운되긴 했지만 벨크로를 꽉 채운 약장 보니 다시 기분 좋아졌지.”


“이제 곧 전역 아닙니까. 80% 가까이하지 않았습니까. 저는 절대 그런 순간 안 올 거 같습니다.”


“나도 너처럼 부사수일 때 선임들한테 그런 소리 했다. 절대 안 올 거 같다고, 선임들도 그러더라. 절대 안 온다고. 하지만 2017년이 지나가고 2018년이 왔지. 난 아직도 기억해. 나 이등병 때 오대기 야간 훈련 끝내고 오대기 생활관 앞에 앉아있는데 곧 전역인 분대장이 와서 나한테 그러더라. 저 밤하늘의 별을 보라고.”


“이승진 말입니까? 저는 그 사람 못 봤습니다. 듣기로는 군 생활 엄청 잘했다고….”


“그럼 에이스였지. 그랬더니 그 인간이 갑자기 저 별이 니 전역이야 이러더라고. 나는 내 처지를 통감했지. 저렇게 멀구나.. 하면서..”


“이제 거의 끝 아니십니까?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래도? 저는 박민혁 상병님 짬만 돼도 소원이 없겠습니다.”


“나에게 아직 전역은 저 별이야. 아니 저 샤넬 파크야…”


나는 이때 말을 잠시 멈췄었다.


“그리고 너도 언젠가 이 순간에 올 거야. 지금은 못 믿겠지만. 그렇게 벅찬 순간을 느끼고 마침내 당도해 준 시간에 감사하며 이 짓거리를 해야 겨우 버틸 수 있는 거야. 난 솔직히 매정했던 내 선임들과 달리 그 순간이 절대 안 온다고는 말 못 하겠어. 물론 전역은 안 오지. 하지만 내 짬은 너도 언젠간 올 거야. 그런 식으로 웃으며 작게 손짓하는 미래를 향해 손을 뻗으며 우린 버텨나가는 거지..”


부사수와 대화를 마치고 난 뒤 정적이 흘렀다. 나는 조용히 샤넬 파크를 응시했다. 그 곳의 빛은 첫눈에 반한 여자를 보는 것처럼 시공간의 초월성이 느껴졌다. 계속 가야 할 시간이 잠시 걸음을 멈춘듯했다. 수많은 전역자들이 느꼈을 감정들이 내 감정에 섞여 마음속에 흘러내렸다. 수많은 전역자들이 우수에 젖은 눈망울을 그 빛에 보태준 것처럼 내 눈에 담긴 빛도 샤넬 파크를 비추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근무가 끝이 난 뒤 터덜터덜 생활관으로 올라가는 길은 보람찼다. 그래도 하루를 이겨냈다는 작은 승리감과 함께 이런 작은 승리들이 모여 지금의 시간을 만들었다는 도취감이 들었다. 그날의 나는 잠을 청하며 머리를 기른 채 군시절을 추억하는 나를 상상했었다. 아름답게 힘들었던 나날들은 샤넬 파크의 빛으로 기억이 되고, 전역이라는 날이 정말로 오는 순간! 우리는 진정으로 아른거렸던 전역이라는 낭만을, 닿을 수 없기에 언젠간 닿기 위해 견뎌왔던 그 아름다운 기다림의 기적을 사랑했다. 그래서 순간순간 나아가야만 했던 것이다. 그 찬란한 샤넬 파크에 손끝을 뻗으며 그렇게 남아 왔던 것이다. 같이 흘러가는 어느 아침, 불빛이 없는 샤넬 파크에 닿기 위해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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