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남아돌 때가 있다. 학교에 다니다가 방학을 했을 때, 졸업을 했을 때, 그리고 퇴사를 했을 때. 보통은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 모두가 일시적으로 충분할 때가 존재한다. 바로 퇴사했을 때가 그렇다. 일하는 동안 쌓여있던 퇴직금과 퇴사 후에 주어진 넉넉하지만 불안한 시간. 그래서 퇴사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곤 한다. 내가 그렇다.
여행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으니까.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를 경험해보고 싶었으니까. 그런 이유로 우리는 시간이 남아돌 때 여행을 먼저 떠올린다. 여행이란 일종의 취미 생활이다. 여행 이외에도 다양한 취미 생활이 있지만 내가 하려는 여행은 취미들을 즐기는 여행이 목적이다.
여행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아무런 목적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나에겐 목적이 필요하다. 시간이 남아돈다는 것처럼 불안한 때는 없다. 특히 20대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는 나이에는 더욱 그렇다. 요즘 들어 친구들과 함께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한다. 지금이 진로를 바꿀 마지막 기회라는 이야기와 함께 미래를 생각한다. 앞으로 뭘 해야 하는가. 이게 여행의 목적이다.
목적이 있는 여행을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보고 다양한 사람을 많이 만나보는 게 필요해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결정해야 한다. 우선 내가 시간이 남아돌게 된 이유를 돌아보자. 퇴사를 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은 조선소였다. 나와 잘 맞지 않았고 그 당시 회사의 상황도 나빴다. 상장했던 주식이 거래 정지될 정도였으니까.
퇴사 후 들어간 곳은 카페였다. 애초에 입사할 때부터 창업을 염두에 두고 들어간 곳이다. 유명한 브랜드의 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면서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그와 동시에 불안감 또한 솟구쳤다. 불안감이 솟구친 이유는 안정감이 들어서 그렇다. 내가 지금 이곳에 안주할 거라는 불안감. 이미 익숙해지고 편해버린 직장에서 고여버릴 것 같다는 느낌. 그 안정감이 주는 불안감이란 가랑비처럼 은근슬쩍 내 몸을 적시고 있었다. 젖는지도 모른 채 둘러보니 이미 푹 젖어서 다른 무언가를 하려는 시도를 굼뜨게 만들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이대로라면 창업이 아니라 태업만 할 것 같았다. 고여있으면 썩을 것만 같았다. 원래 내가 생각했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카페에서 일하면서 창업을 준비한다. 늦게 들어간 대학을 졸업하기 1년 전에 카페를 개업한다. 망하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가거나 대학 졸업장으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변수로 인해서 워킹홀리데이와 창업은 미뤄졌다. 계획은 언제나 있었지만 늘 계획대로만 되진 않는다.
창업을 미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창업을 준비할 생각이다. 그리고 그전까지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일을 배워볼 생각이다. 일 년의 시간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퇴사 날짜를 받아두고 시간이 남아도는 지금 다른 불안감이 샘솟는다. 정말 내가 창업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