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당근

by 글도둑

게스트 하우스를 벗어나 해변가로 걷기 시작했다. 어젯밤 주변이 어두워서 못 봤던 풍경들을 눈에 담았다. 맑은 바닷물이 보이는 해변과 그곳을 거니는 사람들. 다양한 식당과 카페들이 눈에 들어온다. 얼마 걷지도 못하고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카페 앞에 섰다.


파란색 지붕과 하얀색으로 덧칠된 나무집이 눈에 보였다. 빵을 굽고 있는지 달달하면서도 고소한 냄새가 커피 향에 섞여있었다. 홀린 듯이 카페에 들어가 보니 해변가가 한눈에 들어왔다. 창가 쪽 자리에는 반쯤 누워서 해변가를 볼 수 있는 의자가 놓여있었다. 빵 하나와 커피 하나를 주문하고 앉았다. 그때 진동이 울렸다. 주문하고 받은 진동벨이 아니라 내 팔목에서.


기어 핏에서 울린 진동이었다. 화면을 들여다보니 운동했던 시간과 수고했다는 칭찬의 메시지가 보였다. 문득 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나이를 먹고 나면 칭찬이란 걸 듣기 어려워진다고. 그러나 누구보다 칭찬을 원하게 된다고 말이다. 그래서 그럴까. 간단한 산책을 마치고 듣는 ‘수고했어요’라는 단어가 뿌듯하게 다가왔다. 혼자 여행을 와서 말을 별로 하지 않아서 그럴까. 대화 상대가 하나 생긴 기분이었다.


카페에서 해변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카페에서 일하던 사람이 제주도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그러면 당연히 카페에 대한 분석을 하게 된다. 카페의 메뉴와 인테리어, 위치와 가격까지. 일단 인테리어와 위치는 해변가에 아주 잘 어울린다. 카페의 가격과 빵의 가격도 나쁘지 않다. 다만 임대료가 얼마나 될지가 의문이다. 커피는 살짝 산미가 있었고 빵을 곁들여 먹기 딱 좋았다. 창가 쪽에 있는 문은 전부 열려있었고 따스한 햇볕과 바닷바람이 스며들어왔다.


한쪽에는 로스팅 장비들과 커피 추출 도구가 놓여있었다. 벽면에는 바리스타 챔피언쉽에 참여했던 경력이 붙어있었고 그 밑에는 콜드 브루와 원두가 진열되어있었다. 코 시국에도 잘 버티고 있는 이유가 있어 보였다. 근처에도 비슷한 입지의 카페는 많았지만 베이커리 카페는 드물었다. 디저트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다시 출발했다. 오늘은 숙소에서 오른쪽 해변가를, 내일은 숙소에서 왼쪽 해변가를 걸어가 볼 생각이다. 원래 오늘은 서핑을 하려고 했는데 옆에 있는 서핑숍이 굳게 닫혀있는 걸 보니 영 그른 것 같았다. 바닷가에 이어진 도로를 쭉 걸었다. 팔에 또다시 진동이 울렸다. 이번에는 ‘힘내세요’라는 글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채찍과 당근이 뇌리 속을 스쳐 지나갔다. ‘힘내세요’라는 당근을 채찍처럼 휘두르니 나는 계속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해변이 반짝이는 제주도에서 가족과 커플이 거닐고 있다. 나는 그 속을 혼자 걷는다. 가끔씩 힘내라면서 응원해주는 메시지가 팔목에 떠오른다. 기계가 던져주는 당근을 얻어먹으면서 나는 걷고 또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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