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같은 장롱면허를 가진 사람이 연습 없이 운전을 하는 순간, 운전면허는 살인면허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나는 튼튼한 두 다리로 제주도를 걷고 있다. 해변 도로를 걸어가면서 내 근처를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차들이 느껴진다. 번호판은 하, 허, 호로 시작한다. 렌터카라는 의미였다.
열린 창문 사이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는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한 손에는 스마트 폰을 들고 운전하는 모습도 보인다. 중앙선을 침범하면서 위태롭게 달리는 차를 볼수록 차도에서 멀어져 해안가에 붙기 시작했다. 얼마쯤 걸었을까. 중간에 섬뜩한 모습이 보였다. 도보와 도로를 나눠주는 기둥이 무참히 뜯겨간 모습이다. 꽤나 오래되었는지 녹이 슬어있었다. 살짝 굽이진 도로여서 그럴까. 사고 현장이 눈에 선했다. 해안가와 도로를 나눠주는 바위들은 굳건한걸 보니 그래도 바다로 떨어지진 않았나 보다.
예전에 제주도에 왔을 때는 나도 운전을 하긴 했다. 1박 2일밖에 안 되는 시간 동안 운전을 했는데 스트레스가 심했다. 결국 나중에는 같이 갔던 친구가 운전을 도맡아 했다. 내가 운전하는 모습이 불안했는지 운전대를 잡은 내내, 창가 위에 있는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있었다. 여행을 즐기기에는 운전자들이 고생이 너무 심하다. 밥을 먹으면서 간단한 맥주 한잔을 하기도 어렵고 졸리다고 잘 수도 없다. 여행을 같이 갈 때 늘 운전대를 잡아주던 친구들이 다시 한번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혼자서 열심히 걷다 보니 다리가 슬슬 아파왔다. 출발하기 전 찾아놨던 독립서점 겸 카페에 다달을 무렵, 주변을 둘러보니 하허호의 렌터카가 가득했다. 확실히 걷는 것보다 운전하는 게 편하긴 하겠지. 내 목숨과 다른 사람의 목숨이 담보로 걸려있지만 않는다면. 나는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했다. 하허호의 섬, 제주도에서 걷고 또 걷다 보니 나도 운전 연습을 하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 남을 때 운전연수라도 받아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