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풍랑주의보

by 글도둑

창문을 뒤흔드는 바람 소리에 놀라서 잠에서 깨어났다. 오늘은 비가 온다고 예정된 날이었다. 어제저녁부터 하늘이 흐려지더니 어느새 바람이 내 몸을 밀어낼 정도로 강하게 붇고 있었다. 주섬 주섬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섰다. 헤어드라이기로 스타일링을 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어차피 바람을 맞으면 머리카락은 어느새 잔뜩 헝클어져있을 테니까.


저 멀리 거대한 파도가 해안가를 덮치는 걸 봤다. 그 파도 속에는 사람 머리가 둥둥 떠다녔다. 푸른 서핑 보드와 함께 말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서핑이었다. 비가 올 거라는 예보를 듣기 전까지는. 비는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곧 비를 쏟아낼 거라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험악하게 생긴 먹구름들이 잔뜩 있었다. 뚜벅이로 여행하는 나에게 비는 쉬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그러나 거친 바다에 도전하는 사내들이 보였다. 나 또한 무식한 도전정신이 일어났다.


근처에 있던 서핑숍에 무작정 들어가자, 사람이 없었다. 전화를 걸고 잠시 이야기를 나누자 직원이 나왔다. 그리고 ‘풍랑주의보’라는 단어를 꺼냈다.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서핑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신고를 해야 했다. 수상레저 종합정보를 들어가서 이런저런 인증을 거쳐야 했다. 기상특보가 있을 때는 운항 신고를 해야 하는구나.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런 미친 날씨에 바다에 뛰어들어야만 알게 되는 정보다. 신고를 하니 제주 파출소에서 문자가 왔다. 안전 유의하고 퇴수 시에는 연락 달라면서.


슈트와 서핑 보드, 리쉬를 들고 해안가로 갔다. 거센 바람 때문에 나보다 큰 서핑 보드를 옮기기 힘들었다. 얼마나 힘들었냐면 바람 때문에 밀릴 정도였다. 바다를 보니 먼바다까지 나가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보였다. 나도 충분히 제정신이 아니지만 저 멀리까지 나간 사람을 보니 정말 서핑에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당히 준비 운동을 하고 바다에 한걸음 내디뎠다.


초속 5cm라는 영화가 있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 작품으로 유명한데 그 영화에서 한 소녀가 나온다. 사춘기의 짝사랑에 빠진 소녀는 파도타기에 성공하면 고백하기로 결심한다. 그러니까 연애하기 싫다는 소리다.


파도타기는 정말 어렵다. 서핑을 몇 차례 해봤지만 제대로 파도를 타는 데 성공한 적은 딱 한 번밖에 없다. 그마저도 그리 높은 파도가 아니었다. 그 외에는 해안가에 밀려오는 작은 물결에 맞춰서 보드 위에 서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파도에 보드가 뒤집히거나 파도를 정통으로 얻어맞다 보면 바다가 얼마나 짠지 눈코 입으로 느끼게 된다.


풍랑주의보나 빗속에서 서핑을 한다는 사람이 있다면 정중히 권하고 싶다. 베테랑이 아닌 이상 날씨 좋을 때 하라고. 파도타기가 왜 포켓몬스터에서 강력한 기술 중 하나인지 알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나도 파도타기가 왜 그렇게 강한 기술인지 알고 싶지 않았다. 서핑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 자연이 얼마나 강한지. 마음속에 불타오르던 자연과의 사투는 처절하고 짠내 가득한 패배로 막이 내렸다. 아직도 귓속에는 바닷물이 굴러다닌다. 패배를 인정한 약자를 괴롭히는 잔인한 녀석이다.

이전 09화9. 하허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