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오늘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늘 그렇듯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들려주는 전래동화처럼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들어가 볼게요.
그는 살짝 침울해 보였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줬을 때는 인사하기 전에 짧은 질의응답을 통해서 우리의 호기심을 풀어줬다. 종종 이런 긴 이야기를 풀거나 살짝 우울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그는 조용히 이야기를 마치고 사라졌다. 마치 실제 있던 일을 풀어놓고 그때를 추억하는 것처럼.
그의 방송을 자주 보러 갈 때마다 종종 의심이 든다.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를 생생하게 풀어낸다는 건 둘 중 하나다. 정말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 거나, 진짜 경험했거나. 의심은 점차 후자로 기울어지고 있다. 한번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말이다. 최근 들어서 그의 말이 사실이던, 아니던 그의 방송은 점점 인기를 끌고 있었다.
인기가 커지면서 점차 다양한 시청자가 생기기 시작했다. 나처럼 재밌게 듣는 사람도 있지만 이게 거짓말이라는 걸 밝히고자 다양한 자료를 조사해서 질문하는 사람, 그리고 무엇보다 무서운 사람은 과학자였다. 실제로 증명할 수 있다며 만약 허언에게 노화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면 인류의 숙명인 불노불사를 실현해낼 수 있다면서. 그들은 그를 하나의 실험체로 봤다. 그의 몸을 잔뜩 헤집어놓고 분석하고 뜯어고치려 했다. 그래서 그는 그런 과학자를 기피했다. 천년만년 실험실에 갇혀있을 것 같다면서 말이다. 섬뜩한 작자들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는 방송을 켰다. 문득 그의 방송 목적이 궁금해졌다. 왜 위험을 감수하면서 방송을 하는 걸까. 단순히 돈벌이가 목표일까. 아니면 숨겨진 목적이 있는 걸까. 어쩌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싶은, 일종의 고해성사 같은 걸까.
- 안녕하세요, 여러분, 허언이 죽지도 않고 또 왔습니다. 오늘도 시청자가 늘었네요. 이런 추세라면 금방 부자 되네요.
[지난번에 흉터를 보여주셨는데 늙지도 않으면서 흉터는 그대로네요???]
- 이 흉터도 많이 작아진 거예요. 원래는 이것보다 컸을 걸요, 아마도? 그리고 우투리가 남겨준 거라서 유난히 오래가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 만난 도사가 그랬어요. 상처에 신력이 남았다고. 그래서 누가 그 상처를 남겼는지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우투리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놨죠. 그러자 그 도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네’라고 하시더군요. 만약 우투리가 조금이라도 죽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었다면 상처에 스며든 기운이 결국 목숨을 위협했을 거라고.
[어떻게 지금껏 오래 살았는지 과학적으로 확인해본 적 있음?]
- 왜 없겠어요?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데요. 불과 20년 전만 해도 컴퓨터를 다룰 줄도 몰랐어요. 이런 방송은 상상조차 못 했죠. 이게 다 노력해서 얻은 거다, 이 말이야. 응? 하하하, 여러분이 아는 것보다 더 깊고 새로운 지식은 없지만 여러분보다는 더 광범위하고 얕은 지식이 있죠. 그중에서 몇 개는 학위를 받을 정도로 깊은 종류도 있어요. 그중에 하나가 사람의 신체에 대한 지식이죠. 그거 알아요? 저는 마을에서 생활할 때부터 미스터리였어요. 친구들은 늙어서 골골대는데 저는 멀쩡했죠. 처음에는 다들 신기해했어요. 그리고 두려워했죠. 어쩌면 저 녀석이 우리를 늙게 만드는 걸지도 몰라. 어쩌면 저 녀석 때문에 우리가 아픈 걸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할 때, 저는 깨달았어요. 아, 나는 남들과 다르구나. 그리고 이곳저곳 떠돌기 시작했죠.
- 처음에는 그냥 제가 튼튼한 줄 알았어요. 남들보다 체격도 좋고 잘 다치지도 않고 병에 잘 걸리지도 않았죠. 가끔씩 아플 때는 있지만 금방 털고 일어났으니까요. 근데 시간이 흐를수록 오래전에 들었던 전설이 하나 떠올랐어요. 삼천갑자 동방삭이라는 사람이었죠. 만약 제가 먹었던 복숭아가 그가 먹었던 것과 같은 거라면? 나도 그처럼 오래 살지 않을까? 그게 저의 첫 가설이었죠. 그래서 하나씩 실험을 해봤어요. 가장 중요한 실험이자 첫 번째 실험은 아직도 진행 중이에요.
- ‘나는 과연 죽을 수 있는가?’ 이 실험은 여전히 불확실해요. 아직 죽어본 적이 없거든요, 하하하. 그 첫 번째 실험 아래 다양한 부가 실험이 있었죠. 나는 상처 입는가, 나는 질병에 면역인가, 어떤 방식으로 죽음에 도달할 수 있고 어떤 방식의 죽음에는 면역인가. 그래서 칼로 팔뚝을 그어봤어요. 그 흉터는 이미 없어졌죠. 몇 세기도 전에 해본 실험이니까요. 아마 흉터도 한 줌의 때로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중독은 복어 때문에 알 수 있었어요. 스스로에게 일부러 또는 얼떨결에 시험한 결과를 추론한 끝에 제 신체는 ‘느리지만 완벽한 재생’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유레카스러운 깨달음이었죠. 뭐랄까, 느린 위험은 저를 죽일 수 없다고 해야 할까요? 칼이나 총을 맞으면 피를 흘리죠. 충분한 지혈과 영양분 보충이 없다면 아마도 전 죽을 확률이 높아요. 그렇지만 제가 회복할 수 있는 시간과 상황만 주어진다면 다시 회복하겠죠. 보통 인간처럼 회복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근데 흉터도 없이 말끔하게 회복하겠죠. 팔다리가 잘리더라도 잘 붙이면 흉터도 없이 말끔하게 붙을 겁니다. 아마도요.
그는 대뜸 양 소매를 어깨까지 걷어올렸다. 왼쪽 팔뚝의 흉터 빼고는 깨끗했다. 탄탄한 근육만 보였다. 딱 떨어진 어깨에서 내려와서 울룩불룩한 삼두근과 이두근을 지나 푸른 힘줄이 꿈틀거리는 팔뚝까지. 깨끗했다.
- 다른 곳도 마찬가지예요.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흉터가 남지 않더라고요. 제 생각에는 세포가 완벽히 재생하는 걸로 보여요. 사람의 몸은 결국 세포 덩어리잖아요. 췌장에 있는 세포들은 24시간마다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죠. 위? 위는 한 4일 정도 걸려요. 몸 전체가 새로운 세포로 대체되는 시간은 7년이 걸린다고 하죠. 그러나 사람의 몸은 늙어갈수록 노화된 세포가 나오고 그 세포가 누적되면서 ‘노화’가 진행되는 거죠. 그렇게 천천히 사람은 죽어가요. 맞아요,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에 가깝죠.
그는 카메라에 자신의 팔 근육을 과시했다. 양 팔을 어깨 위로 구부리면서 힘을 주니 이두근과 삼두근이 과한 자기주장을 시작했다. 몇 번 불끈거리더니 소매를 내리고 자리에 앉아서 말을 이어갔다.
- 처음에는 제가 잘못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잘못된 것 같았어요. 원래 남 탓이 더 쉽잖아요. 남들이 뭔가 잘못 먹고 잘못 호흡한 게 아닐까. 나는 똑바로 했고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아서 늙는 건 아닐까. 그래서 한 번은 한 사람을 저와 똑같이 생활하게 했죠. 여전히 저만 살아남았더군요. 그때 제가 남과 다르다는 사실을 납득했어요. 이야기가 줄줄 샜지만 결론만 말하자면 과학적으로 확인해본 결과 저는 노화로써의 죽음만 피했을 뿐이에요. 그 외에 방법은 저를 저승사자와 대면시킬 겁니다.
[우투리 이야기하면서 세계의 비밀? 뒤편? 그런 말을 했는데 그건 뭔가요?]
- 아, 그거. 그 이야기는 약간 판타지스럽긴 한데. 으음, 그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맨 처음 호랑이 사냥꾼이 된 이야기를 풀어놔야겠네요. 호랑이 사냥꾼으로서 제가 첫 데뷔했을 때는 참 볼품없었죠. 그 당시엔 세상을 떠돌면서 맹수에게 습격당하지 않기 위한 기술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처음으로 배운 게 사냥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