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언진담- 세계의 뒤편 2

by 글도둑

자, 그러니까 이번에 할 이야기는 호랑이 사냥꾼 밑에서 일을 배우는 허언이란 말이지. 그 당시 나는 뭘 했냐면 나무꾼 출신 행상인이었어. 짚신을 잔뜩 만들어서 집을 떠났지. 저잣거리를 떠돌고 마을을 떠돌면서 신발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흥정과 거래를 익혔어. 그러다가 한 번은 나무 밑에서 노숙을 하는데, 저 멀리서 ‘어흥!’하는 소리에 놀라서 밤새 덜덜 떨었지. 그때 깨달았어. 나보다 강한 맹수를 잡진 못하더라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그럼 결국 사냥꾼처럼 맹수의 흔적을 발견하고 피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지. 그래서 나는 마을을 전전하며 맹수를 잡은 적 있는 사냥꾼을 찾아 헤맸어. 그러다 만났지,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이라고 불리던 진호백을 말이야.


진호백은 어렸을 때부터 사냥꾼으로 자랐대. 9살 때부터 날아가는 매를 쏘아 죽였다고 하더라고. 물론 소문이니까 확실하진 않지만 말이야. 12살 때는 사냥을 알려주던 아버지가 호랑이에게 물려서 돌아가시자 아버지의 유품을 챙겨 들고는 호랑이 사냥에 나섰다고 했어. 그리고 그 호랑이를 잡아서 나라에 이름을 알렸지. 최연소 착호갑사가 될 뻔했지만 왕에게 이르길


“소인은 전국을 돌며 저처럼 호랑이에게 부모를 잃은 이들의 복수를 해주고 싶습니다.”


이랬다더군. 그래서 그는 수도에 집을 두고 전국을 떠돌아다녔어. 그에게 도움을 받은 이들이 마을에 방을 하나씩 내주었다고 하더군.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호랑이를 잡은 지 10년이 되던 여름, 22살의 진호백을 만났지. 그때 그는 한창 전성기를 누리는 최고의 사냥꾼이었어. 두 눈은 호랑이보다 이글거렸고 허벅지는 내 허리통처럼 굵었어. 눈썹은 아주 짙고 부리부리했지. 입이 아주 컸는데 웃을 때마다 목젖이 보일 정도로 호탕하게 웃었어. 나는 그를 찾아가서 대뜸 무릎 꿇고서 말했어.


“사냥을...... 하고 싶습니다!”


그는 껄껄 웃더니 시위가 걸리지 않은 활을 던져주더니 이렇게 말했어.


“이 활에 시위를 거는 데 성공하면 제자로 받아주마!”


활을 드는데 꽤 가벼웠어. 근데 시위를 당기는데 도통 활이 휘지를 않는 거야. 그래서 활을 땅에 박아두고 양손으로 시위를 당겼지. 옆에서 계속 껄껄 웃는 호 백을 둔 채로 한참을 끙끙거렸어. 살짝 휘어질 뿐 시위가 활의 끝에 닿을 기미가 안보였어. 호 백은 활을 달라고 하더니 휙 하고 시위를 거는 시험을 보이더군.


“순간적인 힘이 중요하다. 다시 해봐.”


나도 따라서 한 손은 활을 잡고 한 손으로 시위를 잡아서 한 번에 휙 당겼어. 아까보다 조금 더 휘더니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지.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어. 내가 경험한 온갖 것들을 떠올리면서 방법을 찾았지. 이리저리 해보다가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전설의 사냥꾼에게 말했지.


“힘이 다 빠졌으니 내일 다시 시도해봐도 될까요?”


그는 또다시 껄껄 웃더니 고개를 끄덕였어. 그리고는 활을 챙겨서 집으로 들어가더군. 나는 어디서 자야 할지 몰라서 주변을 둘러봤는데 문이 벌컥 열리더니 얼른 들어오라고 하더군. 나중에 물어보니 하루 종일 활과 씨름하던 모습이 근성 있어 보여서 좋았다더군. 나는 그에게 물었어.


“대체 어떻게 하신 겁니까? 무슨 활이 이렇게 튼튼해요?”


“솜씨 있는 장인이 나를 위해 만들어준 건데, 벼락 맞은 대추나무로 만들어서 아주 단단하다고 하더군. 자세히 한번 보겠나?”


나는 호롱불 아래서 활을 살짝 비춰봤어. 그동안 끙끙 거리며 시위를 걸려고 애쓰느라 보지 못했던 활의 자태가 드러났지. 탄력이 넘치는 검은 대나무가 위아래로 뻗어있고 그 중간에 검은 나무가 덧대어져 있었어. 그게 벼락 맞은 대추나무였는지 은은한 검은 광택을 뜨였는데 이상하게도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어. 다시 한번 살짝 당겨보는데 대나무는 잘 휘는 반면에 대추나무는 꿋꿋하게 버티고 있었지. 벼락 맞은 대추나무에서는 묘한 향기가 났어. 아주 멋진 죽궁이었지. 진호백은 활을 가져가더니 말했어.


“나는 주로 호환이 들었다는 마을을 찾아가서 발자국을 뒤쫓는다네. 호랑이에게 원한이 많은 동네일수록 호랑이는 더 위험해. 보통은 늙은 호랑이가 젊은 호랑이에게 산군 자리를 뺏기고 사냥하는데 실패해서 마을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 보니 경험이 많이 쌓이고 사람을 보고 판단한다네. 늙을수록 교활해지는 녀석들이지. 물론, 그만큼 돈벌이는 좋아. 정부에서도 포상이 나오고 마을에서도 십시일반 돈을 걷어서 주기도 해. 나에게 돈은 중요한 게 아니지만 말이야. 어쨌든 결국 목숨을 걸어야 해. 할 수 있겠나? 나에게 배우려는 녀석들은 꽤 많았지만 여태껏 제대로 배워간 녀석은 없었네. 호랑이를 한번 보고 나서 오줌 지리고 다들 도망쳤지. 잘 생각하는 게 좋을 거야."


그는 그 말을 끝으로 이부자리에 들어가서 누웠어. 나도 옆에 누웠지. 그리고 생각했어. 오래 살기 위해서라면 이 사람 옆에 철석같이 붙어서 배워야겠다고. 하다못해 활 쏘는 법과 흔적을 파악하는 법이라도 배워야겠다고 말이야. 그다음 날 아침에 호 백이 드르렁 거리는 소리에 잠에 깼지. 밖에 나가서 몸을 푸는데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오고 있었어. 어느 정도 직위가 있는 군인 같았지. 허리춤에는 환도를 차고 있어서 꽤나 멋스러웠으나 얼마나 바쁘게 움직였는지 머리는 산발이고 옷은 다 풀어진 상태였어.


“진호백 착호갑사님! 큰일 났습니다!”


그는 말에서 내려서 집 안으로 뛰어가더니 호백을 흔들어 깨웠어. 그는 입을 벌려서 하품을 쩍 쩍 하며 일어나더니 등을 벅벅 긁으며 그를 쳐다봤어.


“뭐야, 심종장이구나? 무슨 일이야?”


“병호(餠虎)가 나타났습니다!”


호백은 벌떡 일어나더니 어디냐고 외쳤어. 병호는 떡 호랑이라는 소리였는데 나는 무슨 이야긴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다가 진호백 착호갑사를 따라나섰지. 내가 알고 있던 소문과는 다르게 최연소 착호갑사가 되어있더군. 정말 전설의 호랑이 사냥꾼 같아서 내심 잘 찾아왔다고 뿌듯해했어. 그런데 그는 문득 나를 돌아보며 말했어.


“목숨은 보장할 테니 이번 사냥을 도와주겠나? 대신 정말 소름 끼치게 무서울 걸세. 병호는 다른 호랑이랑은 다르거든. 내 오랜 숙적이기도 하지.”


무장은 다양했는데 왼쪽 발목에는 단도를 묶어두고 오른쪽 허벅지에는 화살통을 찼어. 오른쪽 어깨에서 왼쪽 허리춤까지는 던질 수 있는 작은 투검이 여러 개 꽂혀있는 투검대를 걸쳤지. 그리고서 왼손에는 죽궁을 들었어. 그는 집안에 있던 자신의 무장을 챙기면서 빠르게 말했어.


“내 소문은 들었겠지? 6살 때 날아가던 매를 쏘아 떨어트리고 10살에는 화살 하나로 두 마리의 새를 잡고 12살에 이르러서는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문 말이야. 그래, 12살에 아버지를 잃었지. 아버지를 물었던 호랑이를 쫓고 쫓았지만 결국 내가 잡은 건 그냥 호랑이였어. 늙고 병든 호랑이. 너무나 배고픈 나머지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마을로 내려온 호랑이 말이야. 나처럼 호랑이 사냥꾼이던 아버지는 그런 호랑이에게 죽은 게 아니더군. 내 아버지의 원수는 병호라는 녀석이야. 떡 호랑이, 요괴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허언진담- 세계의 뒤편 1